2014/03/30 14:25:00
영어공부는 어떻게 시켰을까. 영어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 그는 ‘엄마가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듯 글자공부보다 듣고 따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녹음테이프다. 첫째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녹음기를 사서 교과서 영어테이프를 매일 들려주었고, 막내가 중학교에 입학하자 차를 한 대 사서 등교길에 영어 교과서 테이프를 들려주었다. 차로 12분 거리인 등교시간은 한 단원을 들려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막내는 자연스럽게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했고, 영어를 ‘공부’가 아닌 ‘언어’
로 인식하게 됐다.
황보태조씨의 공부놀이는 손주들에게서도 톡톡히 효과를 봤다. 여섯 명의 손주를 둔 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주를 위해 ‘검산 노래’를 만들었다. “한두 개는 틀렸으니 찾아봅시다. 보물찾기 하듯 찾아봅시다”라는 가사의 짧은 노래. “시험을 본 후 검산을 꼭 해라”라는 뻔한 말은 귓등으로 들렸지만 할아버지의 검산노래는 귓속과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얼마 전 손주는 “할아버지 노래대로 검산했더니 진짜 틀린 문제를 발견했어요”라고 말했다 한다.
황보숙씨는 인생의 궤도를 대대적으로 틀어 의사가 된 경우다. 그는 포항공대 화학과에 수석 입학, 졸업해 반도체 관련 회사에 다니다 28세에 경북대 의대로 편입했다. 황보숙씨는 “반도체회사 시절 해외출장이 잦아서 좋기도 했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원했다. 둘다 의사인 언니들의 영향도 컸다. 프랑스 출장 당시 의료복지 분야에 깊은 인상을 받고 의대 쪽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펌프질이 방점을 찍었다. “얘가 겁을 냈다. 내가 그런 데는(의지 북돋워주는 데는) 달인이다. ‘너는 된다. 틀림없이 하면 된다’고 부추겼
다.” 여기에서 아버지 황보씨의 또 하나의 교육철학이 드러난다. 절대긍정 마인드. 그는 “칭찬보다 더 좋은 거름은 없다”며 말을 이었다. “똑똑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자식의 성적표를 보고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막 화를 내면서 ‘내가 발바닥으로 공부해도 그 정도는 하겠다’라고 하더라. 그런 말을 듣고 어떤 아이가 공부를 재미있어 하겠나.”
인터뷰 도중 아버지 황보씨는 연신 딸을 추켜세웠다. “우리 딸 말 잘하지요” “원장이라니까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늘 웃고 매사에 긍정적인 황보태조씨. 이건 아버지로서의 모습이다. 한 인간으로서 황보태조씨는 딴 모습이라고 한다. “성질이 고약하다. 화도 잘 내고. 그런데 아이들을 대할 때에는 성질대로 하면 안 된다.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성질도 죽였다. 아이들에게 말할 때에는 할 말 못할 말을 미리 골라낸다. 농부가 쌀 속에서 돌을 골라내듯 말이다.”
승승장구 황보태조식 자녀교육에 브레이크가 걸린 순간이 있다. 바로 막내아들을 낳고서다. 누나들에게서 효과를 거둔 글자놀이법이 아들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그는 실패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했다. 첫째, 남자 아이라 누나들과 성정이 다르고, 둘째, 또래 형제가 없어 글자놀이에 흥미를 붙이기 어렵고, 셋째, 로봇 이름 짓기 놀이는 인형놀이에 비해 가짓수가 적다. 이후 그는 ‘편지놀이’를 개발했다. 아들이 아내에게 편지로 먹고 싶은 단어를 써 주면 아내가 장에 다녀오면서 편지에 있는 물건을 사다주는 것이다. ‘이 글자에 이런 의미가 있구나’라는 것을 깨우친 아이는 신기해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자놀이에 빠져들었다.
아버지 황보씨는 “요즘 엄마들은 공부에 정 떨어지게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송편도 속을 넣어야 맛있고, 떡도 고물을 묻혀야 맛있고, 쓴 약에는 당의정을 입힌다. 공부놀이를 통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마음밭을 일구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가 시켜서 하는 공부는 당장 효과가 있어 보이지만 아니다. 커 봐라. 절대 공부 안 한다.”황보숙씨도 아버지처럼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교육철학의 핵심을 ‘관찰력’이라고 했다. “엄마가 돼 보니 알겠다. 어렸을 때 내가 뭘하든 아버지가 세심히 관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무언가를 시키려는 건 부모의 욕심이다. 한 걸음 뒤에서 아이가 노는 것을 관찰하면서 관심 분야를 찾아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이다. 공부는 그 다음 이야기다. 집중력 있는 일을 아이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공부는 저절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