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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한국사] 부여는 나랏일을 왕이 아닌 '귀족회의'에서 정해

2014/04/07 09:32:19

◇농사와 목축이 중요했던 부여

고조선이 멸망할 즈음, 가장 먼저 나라다운 틀을 갖추기 시작한 나라는 부여였습니다. 만주 송화강 유역의 넓은 평원에 자리 잡은 부여는 5개의 부족이 힘을 모아 세운 나라였어요. 그래서 왕은 자신이 머무는 지역만 주로 다스렸고, 나머지 땅은 '대가'라고 불리는 그 부족의 지배자가 통치했죠.

부여가 차지하고 있던 송화강 유역은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어요. 그 때문에 농사가 발달했지요. 또 목축 역시 널리 퍼져 있었고 그것을 농사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어요. 관직의 이름도 이들이 키웠던 짐승의 이름을 따서 붙였습니다. 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같은 식으로 말이에요. 마(馬)는 말, 우(牛)는 소, 저(猪)는 돼지, 구(拘)는 개를 뜻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마가, 우가, 저가, 구가가 다스리던 지역을 '사출도'라고 불렀는데, 왕이 직접 통치하는 중앙과 합하여 5부를 이뤘습니다. 부여의 중요한 나랏일은 바로 이 지역의 통치자가 모두 참여하는 귀족회의를 통해서 정했습니다. 이때, 귀족회의의 권력은 아주 막강해서 왕이라도 귀족회의에서 나온 결정에 따라야 했지요.

"지금 몇 해째 흉년이 거듭되어 백성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는 왕이 어질지 못한 탓이니, 왕이 물러나야 합니다!" 가령 귀족회의에서 이런 결정이 내려지면, 왕은 두말없이 왕의 자리를 내줘야 했습니다.

큰 힘을 갖고 있던 왕이나 귀족들은 죽은 뒤에도 큰 영화를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죽으면 살아 있을 때 쓰던 물건들과 노비를 함께 묻었지요. 죽은 뒤에도 똑같은 생활을 하라는 바람에서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100명이 넘는 노비가 산 채로 땅에 묻혔습니다. 이 제도를 '순장'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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