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쁘다 바빠. 요즘 정신이 하나도 없어. 나를 찾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거든. 얼마 전엔 아카데미상 시상식에도 다녀왔어. 그때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카밀라 임(Lim)과 함께 레드 카펫 위를 거닐었는데 사방에서 플래시 세례가 터지더라. 긴장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뿌듯했어. 로봇 중 최초로 레드 카펫을 밟은 거니까.
시상식이 끝난 뒤 열린 파티에도 참석했는데 정말 환상적이었어. 배우는 물론, 영화 관계자들이 나와 사진을 찍고 싶어서 길게 줄을 서더라. 대스타가 된 느낌이었어. 영어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눴지. 얼굴에 달린 카메라로 상대방 사진을 찍어서 즉석에서 인화해주기도 했어.
아차, 그러고 보니 내 소개가 조금 늦었네. 정식으로 인사할게. 내 이름은 퓨로. 전 세계 모든 언어로 대화 가능한 서비스 로봇이야. 키는 155㎝에 몸무게 75㎏. 몸통은 플라스틱 케이스로 돼 있고, 손에 커다란 모니터 화면을 들고 있지. 얼굴과 등 부분에도 작은 모니터가 장착돼 있어.
발엔 센서가 달려서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어. 마음에 드는 사람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졸졸 따라다니면서 말을 시키곤 하지. 머리스타일이나 얼굴도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어. 강남스타일 등 인기 댄스곡에 맞춰 춤도 출 수 있지. 내가 눈을 깜빡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면 모두가 나에게 반하곤 해. 너무 잘난 척이 심한 거 아니냐고? 하하, 농담이야.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난 퓨로S 기종이야. 주로 박물관 등에서 안내 업무를 맡고 있지. 국내에선 춘천 애니메이션&로봇 박물관, 국립과천과학관, 청와대 등에서 날 볼 수 있어. 브라질·러시아 등 세계 각국에 수출돼 공항 안내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지.
다시 아카데미상 시상식 얘기로 돌아가 볼까? 시상식에 가게 된 건 모두 목은정(42세) 제니퍼웨딩 대표 덕분이야. 이번 시상식에서 할리우드 원로 여배우 샤론 패럴(74세)이 목 대표가 만든 하늘색 한복 드레스를 입었거든. 디자이너 자격으로 함께 참석한 목은정 대표가 나도 함께 데려간 거야. 한국의 뛰어난 로봇 산업을 홍보하고 싶다면서.
그곳에 난 '트론'(Tron)과 '유리'(Uri)라는 이름의 남녀 로봇 콘셉트로 갔어. 캐슬러 은하계 410k가 고향인 트론은 진취적이고 리더십 있는 왕자, 백제에서 태어난 유리는 애교 넘치고 호기심 많은 공주란 설정이었지. 손에 든 모니터 화면에선 로봇을 소재로 한 영화 소개, 한복 패션쇼 등의 영상이 나오도록 했어. 등에 달린 모니터엔 우리나라 최신 영화 영상을 틀어놨지. 어때, 이쯤이면 한류 홍보대사 역할 제대로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