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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인터뷰] 첫 여성 국립국악원장 김해숙 가야금 명인

2014/01/13 16:39:09

"최근 국악원 수장은 대부분 이론을 전공한 분들이었는데요. 아무래도 전 연주 활동과 교직 생활(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등)을 이어온 만큼, 예술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여성이니만큼 섬세하고 꼼꼼한 부분도 있겠죠?(웃음)"

김 원장이 국악에 발을 들인 건 중학교 때다. 당시 숙명여중 입학시험에서 떨어져 진로를 걱정하던 그는 고민 끝에 국악중 진학을 결정했다. "두 살 위 언니가 거문고를 하기도 했고, 아버지께서도 국악 애호가여서 어릴적부터 국악이 친숙했어요. 수많은 국악기 중 가야금을 선택한 이유요? 글쎄요. 그땐 솔직히 처음엔 별생각 없었던 것 같은데(웃음)…. 아마 손끝이 스치기만 해도 예쁜 소리가 나는 데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하지만 가야금을 배우는 과정은 고달팠다. 매일 손에 물집 잡히고 그 자리에 피가 맺힌 뒤 굳은살이 되는 일이 반복됐다. "정말 아팠어요. 물집 잡힌 손으로 매서운 명주실을 튕기는 게 무척 고통스러웠죠. 하지만 그만두지 않았던 건 점점 가야금에 매료됐기 때문이에요. 오동나무, 명주실 등 자연을 재료 삼아 만들어진 가야금의 음색을 접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어요."

국악중 졸업 후 그는 국악고를 거쳐 서울대 국악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8년부터 한예종 교수로 재직했다. 2005년부터 2년간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으로도 일했다.

연주자로도 명성을 떨쳤다. 지난 2004년 관재음악상을 수상했으며, 함동정월 명인에게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를 사사했다. 그가 지금까지 낸 산조 음반은 총 3장. 그중 하나가 최근 프랑스 국영 라디오 방송 산하 기관인 '라디오 프랑스'를 통해 전 세계 63개국을 대상으로 출시한 '최옥삼류 가야금산조'다.

"흩은 가락이란 의미를 지닌 산조는 조선 후기인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기악 독주곡이에요. 전 산조의 등장이 혁명과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조선 전기엔 의식이나 행사에 사용되는 음악이 주로 발달했어요. 하지만 후기 들어 개개인의 마음이나 감정을 표현한 산조가 등장했죠. 우리 민족의 뛰어난 예술적 감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에요."

그는 국악인을 꿈꾸는 어린이들이 갖춰야 할 자질로 '진득함'을 꼽았다. "당장의 성패나 결과에 좌지우지되지 말고 앞을 멀리 내다보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어요. '대기만성'이란 말을 마음이 새기면서요. 또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것도 중요해요. 음악이란 건 결국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주 기술만 뛰어나다고 해서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없거든요. 음악을 자주, 그리고 많이 듣는 건 필수예요."

마지막으로 김 원장에게 임기 2년 동안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어린이·청소년 등 다양한 연령층에게 사랑받는 국악원만의 공연 레퍼토리 개발에 힘쓸 생각이에요. 여러 이유로 근현대 들어 국악이 대중매체나 교육에서 소외된 측면이 있어요. 국악은 5000년 넘는 우리 역사가 응축된 결과물이에요. 우리 얼굴이자, 정체성이죠. 이 아름답고 소중한 우리 음악을 보다 많은 한국인이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국악원에서 초등생을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에 한번 참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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