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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강남 한복판 파고드는 未인가 영어학교, 그 정체는?

2013/12/06 18:52:50

이 같은 이른바 ‘국제학교’는 어떤 곳일까. 글로벌인재 양성을 주창하는 국내 교육기관으로는 외국어고와 국제고, 외국인학교, 외국인교육기관 등으로 다양하다. 이 중 외국어고와 국제고 등 특목고를 제외한 외국인학교는 교육법상 ‘각종학교’에 속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76조의2에 따르면 국내 고교의 유형은 일반고, 특수목적고, 특성화고, 자율고, 각종학교 등 5가지로 구분된다. 외국어고와 국제고는 특수목적고에, 대안학교와 외국인학교는 각종학교에 속해 있다. 각종학교는 국내학력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국제고는 글로벌인재 양성을 위해 국제 관련 교과목이 특화된 학교다. 서울국제고와 청심국제고, 세종국제고 등 7곳으로 학교 자체적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며 국적제한은 없다.

 외국인학교는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자녀와 외국에 3년 이상 장기 거주한 내국인 교육을 위해 설립된 학교로, 내국인은 정원의 30%까지만 입학이 가능하다. 외국인학교는 국내에 51곳이 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외국교육기관’이 있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조성한 경제자유구역 및 제주도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교육여건을 향상시키고자 설립된 교육기관을 외국교육기관이라 한다. 외국인을 위한 인가 학교지만 외국인학교와 다른 점은 내국인 입학이 일정 비율 가능하다는 점과 법적으로 지정된 특구 내에서만 운영된다는 점이다. 이 같은 외국교육기관으로는 인천송도국제학교(채드윅), 대구국제학교(DIS), 한국국제학교 제주캠퍼스(KIS Jeju), 노스런던컬리짓스쿨 제주(NLCS Jeju), 브랭섬홀아시아 제주(BHA Jeju) 등 5곳이 있다.
 
“외국인학교도 어차피 한국학력 인정 위해서는 검정고시 봐야”
 
 외국인학교와 외국교육기관은 대안학교와 마찬가지로 국내학력이 인정되지 않아서 초·중·고 12년 과정을 마치더라도 국내대학을 지원할 수 없다. 국외대학에 유학생으로 진학하든지 국내대학에 가려면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문제는 법적인 ‘외국인학교’와 ‘외국교육기관’이 아니면서 100% 영어수업을 하는 학교들이다. 법 조항에는 찾아볼 수 없는 ‘국제학교’가 대부분 이런 곳이다. 외국인학교 51곳과 외국교육기관 5곳을 제외하고 국제학교, 국외학교, 인터내셔널스쿨, 칼리지 등의 이름을 달고 외국국적이나 외국체류기간 등 입학자격이 별도로 없는 영어수업 학교들은 모두 교육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학교가 아닌 ‘학원’이다.

 일부 국제학교 상담자들은 상담시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외국인학교는 아니고 ‘대안학교’라고 보시면 돼요. 원래 대안학교가 학력인정은 안 되지만 재벌들도 대안학교에 보내잖아요.” 그러나 교육부가 집계한 전국 185개 미인가 대안학교 명단을 보면, 이 같은 영어수업 학교는 일산 H학교와 파주 K학교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강남이나 분당, 용인 등 지역의 국제학교들은 대부분 학원법상의 학원으로 등록하고 영업하는 것이다.

 교육법에서 국제학교라는 명칭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 용산국제학교와 서울국제학교, 하비에르국제학교 등 외국인학교가 국제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어서 혼동을 가져오긴 하지만 누구든 ‘국제학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학원영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미인가 영어학교를 ‘변종국제학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미인가 영어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의 대다수는 법적으로 학교가 아니라는 점을 크게 문제삼지 않고 있었다. 외국인학교도 국내학력 인정이 되지 않고 국내 대학에 가려면 검정고시를 봐야 하는 점은 똑같은 만큼 정식 외국인학교와 영어학교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 외국인학교가 대부분 연 학비가 3000만원 전후인데 비해 영어학교는 2000만원 전후로 비교적 저렴하다는 것도 영어학교를 찾는 이유다.
 이들 학교는 국내학력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갑자기 사라져도 책임질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월 150만여 원의 수업료를 받는 강남의 영어학원 유치부(세칭 영어유치원)가 경영난 또는 원장 개인사정으로 야반도주하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영어와 기타 私교육 ‘두 마리 토끼’?

 취재를 계속하다 보니 학부모들이 정체도 불분명한 국제학교나 국외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이유가 단순히 영어교육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국제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 B씨를 만났다. 아이가 해당 학교의 유치부를 졸업하던 시점 사립초와 공립초, 수도권 국제학교 등을 고려하다 결국 같은 학교로 진학시켰다고 한다.

- 유학을 포기하고 국외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조기유학을 가면 영어는 잡을지 몰라도 수학이나 논술을 놓치게 되잖아요. 초등 고학년이 되면 과목 수가 늘어나는데 아이가 미국에 있는 동안 대치동에서 잘나가는 수학이나 논술학원에 계속 다닌 애들과 경쟁을 할 수 있겠어요? 국제학교는 영어로 학교생활을 하면서 그 외 사교육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공립 다니는 아이들도 학교에서 공부하는 거 아니잖아요. 학원 가서 다 배우는 거지. 2학년이면 영어를 웬만큼 마치고 3학년 되면서 사회와 과학, 역사 같은 과목들을 공부해야 한다는데 그때 해외에 계속 머무른다는 것도 좀 걱정되더라고요.”

- 국내 정규교육 과정을 포기한다는 점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유학가 있는 애들은 전부 한국인이면서 한국 정규교육 못 받으니 문제가 되는 건가요? 학교에서 역사나 수학도 다 배워요. 한국사 수업도 가끔 해 주고요. 중국어 시간도 있어요. 캐나다 정규교육을 영어로 받으면서 다른 사교육도 시킬 수 있으니 유학과 대치동교육의 장점만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성업 중인 국외학교와 변종국제학교들은 B씨와 같은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에 기대를 갖고 있다. 미국학교 생활을 체험하면서 기러기 생활은 안 해도 되니 부모와의 유대관계도 유지할 수 있고, 방과후나 주말을 이용해 한국식 사교육도 모두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수업수준 강남 학부모 기대에 못 미치기도
 
 그러나 학원으로 등록된 대부분의 변종국제학교는 한국 학생이 100%인 만큼 기대만큼의 영어습득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많다. 강남 소재 한 국제학교에서 아이를 공립학교로 편입시킨 학부모 C씨는 “수업이 영어유치원보다도 수준이 낮고 마음에 안 차 전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과연 영어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학교에서 기본 인성을 배워야 할 초등 저학년 자녀를 자격 모를 원어민들이 가르치는 미인가 영어학교에 보내는 것일까. 이를 방치하는 교육당국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영어로 수업하는 5~7세 대상 유아교육기관이 처음 생겨나던 10여 년 전 교육부와 유치원 관계자들은 “법적으로 영어유치원이란 말은 있을 수 없고 영어학원 유치부일 뿐”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미인가 유아교육기관은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별다른 단속도 이뤄지지 않았고 일반유치원과 어린이집 부족현상이 계속되면서 어느새 강남 일대에서 ‘영어유치원’은 유아교육의 대세가 되고 있다.

 민주당 윤관석 의원은 “요즘 강남에서 미인가 대안학교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자녀들이 내신 등으로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미인가 대안학교를 통해 내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상황에 따라서는 국내 명문대학과 해외유학 진입이 수월하기 때문에 미인가 대안학교를 선호한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 이 학교들이 아무런 규제를 받고 있지 않고 원래 대안학교의 의미와는 동떨어져 있는 상태”라며 “학원도 비용이 너무 비싸면 교육청에서 규제하고 있는데 연 2000만~3000만원을 받는 대안학교는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며 시급히 실태를 파악하고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영어교육이나 미인가 교육기관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미인가 영어학교도 어느새 ‘국제학교’로 유야무야 정식 교육기관처럼 영업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과거를 알 수 없는 원어민교사 자질문제와 갑작스런 학교폐쇄 등 피해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쓸 수 있다. “미인가 교육기관에 보낸 사람이 잘못한 것”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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