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12 13:59:17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산 지 2년, 아들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성실성이다. 학교에 빠지거나 지각 한 번 없이 꼬박꼬박 다니고, 은규가 다니는 실업계 학교인 A고등학교에서 학과 1등을 도맡아 한다. 성적우수 장학금도 받는다. 시험기간에는 도서실에 자발적으로 나가고,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학교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서 궁금증을 해소한다. 또 하나, 아버지와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몸이 스치기만 해도 소스라치던 아이는 이제 아빠와 스스럼없이 포옹을 하고 아빠가 뽀뽀하자고 입을 죽 내밀면 못 이기는 듯 볼을 내준다. 욕도 거의 안 하고, 술도 잘 안 마신다. 담배도 끊었다.
이들 부자를 주간조선 연재 ‘新인재시교’에 소개하기 위해 섭외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도, 아들도 인터뷰를 내내 고사했다. 아버지는 “내가 아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공치사를 하는 것 같아 내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들은 “이전에 인재시교에 소개된 자녀들을 보니 결과물도 있고 성공도 했는데, 나는 아직 이룬 게 없으니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은규 입장에서 보면 문제 많던 자신의 과거를 들춰내는 것이 내키지 않는 게 당연했다. 부자는 여러 날 새벽까지 대화를 나눈 끝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아버지는 “내가 2년간 은규와 단둘이 있으면서 쌓은 경험을 다른 아버지들과 공유하고 싶다”며 허락했고, 은규는 “이건 내 자서전이 아니라 아빠와의 관계 회복에 대한 이야기니까 아빠가 대한민국 일진 아빠의 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유를 밝혔다. 부자가 신신당부를 한 말이 있다. 일진 시절의 은규와 지금의 은규를 이분법적으로 쓰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은규는 “일진으로 불리던 그때에도 생각 없이 논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이러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늘 있었고, 지금은 그것을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9월 9일 오후, 부자가 사는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의 자택을 찾아갔다. 양평역 바로 옆에 있는 고층 아파트는 깔끔하고 정갈했다. 건축업계 CEO 출신답게 인테리어 감각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곳에는 현재 남자 셋이 산다. 부자(父子) 외에도 이태후 목사가 방 한 칸을 한시적으로 쓰고 있다. 이태후 목사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우범지역인 노스센트럴에 살면서 이곳 주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활동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필라델피아 언론에 종종 보도됐고, 주간조선 2173호(2011년 9월 19일자)에도 스토리가 소개된 바 있다. 이 목사는 잠시 국내에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