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막연한 호기심으로 결정한 인도어과 선택
이정호 교수는 경북 상주 출신이다. 한국외대 인도어과를 택한 건 막연한 호기심이었다. 역사책에서 본 신비의 나라 인도. 인도어과가 신설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새로운 기회를 열어보자’는 열정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첫 은사는 인도의 델리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돌아온 고 박석일 교수. 이 교수는 한국외대 인도어과 졸업 직후 인도 국비유학생 1호로 선정돼 유학길에 올랐다. 힌디 교육센터(Central Institute of Hindi)에서 2년간 배운 후 네루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미룻(Meerut)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개척자에게 기회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1981년 귀국하자마자 한국외대 전임교수가 됐다.
그는 1995년 국내 최초로 ‘힌디-한국어사전’을 펴냈다. 1172쪽에 달한다. 교육부 지원을 받아서 낸 책으로 편찬에만 꼬박 10년이 걸렸다. ‘개척자’ ‘선구자’ 등의 표현을 부담스러워하며 “때를 잘 만나서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 하던 그는 사전 이야기가 나오자 달라졌다. 편찬과정의 고충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다른 희귀어 사전도 마찬가지겠지만 모델이 없어서 상당히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편찬된 지 18년이 지났지만 이 사전은 여전히 국내 유일의 힌디-한국어사전이다.
“힌디-영어사전을 모델로 만들었다. 영문 전체를 번역한 후 우리말 환경에 맞게 다시 사전을 만들어야 했다. 기본 한 단어당 A4용지로 카드를 만들고 파생어 20~30개씩 띠지를 만들어 붙였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놓은 A4용지의 높이가 족히 30㎝는 됐다. 학과 학생 수십 명의 도움을 받았다. 대표적인 학생이 부산외대 박장식 교수다. 당시 조교로 있으면서 많은 도움을 줬다. 인쇄도 난관이었다. 힌디어 자모가 없어서 용산에 있는 작은 출판사에 가서 자모를 새로 만들어 인쇄해야 했다.”
이정호 교수는 마하트마 간디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007년에는 ‘아힘사’를 펴냈다. 아힘사는 간디가 실천한 비폭력 사상으로, 인도인들에게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정신적 유산이다. 이 교수는 정년 퇴임 즈음 ‘마하트마 간디 평전’을 낼 계획이다. 그는 “기존의 간디 평전이 1920년대 간디가 쓴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이번에 내는 책은 그 이후부터 1948년 간디가 사망하기까지의 행적에 무게를 둔 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