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04 16:47:58
◇이야기를 나누며 시 세계에 풍덩
책에는 봉화 물야초 북지·수식분교, 소천초 남회룡분교 어린이 20명이 쓴 시 60편이 소개된다. 이 중 10여 편은 소년조선일보 문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책 출판은 문예상 동시 부문 심사를 맡고 있는 박혜선 아동문학가의 추천으로 이뤄졌다.
송예슬 크레용하우스 편집자는 "시 속엔 시골 분교 아이들만의 순수하고 솔직한 표현이 가득하다. 기분 좋은 웃음을 안겨줄 뿐 아니라 코끝 찡한 울림을 준다. 어른 시인들 작품 못지않게 작품성이 뛰어나 흔쾌히 출간을 결정했다"고 했다.
이날 찾은 북지분교는 전교생이 10명인 작은 학교다. 삐걱거리는 나무 복도를 지나 작은 교실에 들어가니 꼬마 시인 여섯 명이 재잘재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유한성(2년)·유한결(4년)·김한샘(5년) 군, 최다현(6년) 양과 이 학교 졸업생인 김진한 군, 김누리 양(이상 봉화중 1년)이다.
"제가 쓴 시가 책으로 묶여 나온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엄마가 동네방네 자랑을 많이 하시더라고요(웃음)." (김진한) "진짜 시인이 된 것 같아요. 몸에 기분 좋은 피가 흐르는 느낌이에요!" (김한샘)
이들이 시를 쓰기 시작한 건 불과 1~2년 전. 송명원(36세) 선생님이 지도하는 방과후교실 시 창작 수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2010년 남회룡분교를 거쳐 수식·북지분교로 온 송 선생님은 "글을 통해 아이들의 보물 같은 감성을 끌어내고 싶었다. 때마침 분교에 재직하게 되면서 실천에 나섰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생처음 시를 접한 어린이들은 글감을 정하는 일조차 어려워했다. 매시간 입을 모아 "선생님 쓸 게 없어요!" "어떻게 써야 해요?"를 외쳤다. 송 선생님은 고민 끝에 특별한 방법을 마련했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함께 소재를 정하곤 했어요.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어?' '친구들하고 뭐 하고 놀았어?' 등 생활 속에서 글감을 찾았죠."
◇개성 넘치는 시골 생활 그려내다
어린이들의 소소한 이야기는 근사한 시로 바뀌었다. 집에서 돼지 100마리를 키우는 한결이는 돼지가 도살장에 팔려 가는 모습을 짤막한 시로 그려냈다. "(전략) 트럭 뒤에 밥을 실어 두고/ 삼촌과 아빠가 엉덩이를 밀어도/ '꾸웨웩 꾸웨웩' 소리만 지르고/ 돼지는 트럭에 타지 않는다." ('돼지' 중)
진한이는 "돼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동생이지만 시 쓰는 실력이 대단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결이는 "솔직히 시 쓰는 시간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막상 주제를 정하고 시를 써 내려갈 땐 즐거워요. 매달 소년조선일보에 응모작을 보내놓고 기다릴 땐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누리는 어릴 때 소아암 앓은 경험을 시에 녹였다. "(전략) 항암 치료해서/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중략// "머리카락도 없고, 괴물 같네."// 가슴에 꽂힌 아이들의 말/ 조금만 더 들으면 된다.// 내가 이겨 낸 소아암처럼/ 얇고 짧은 머리카락도/ 나처럼 튼튼해질 것이다." ('머리카락' 중)
누리는 시를 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특히 '머리카락'을 완성하고 나서 왠지 마음이 시원했어요. 위로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요. 다른 사람들도 제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을까요?"
박혜선 작가는 "이 친구들의 시엔 아이들의 언어가 살아있다. 개성 넘치는 시골 생활이 묻어난다. 시 한 줄, 문장 하나에 동화보다 더 커다란 아이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뭉클하고 사랑스럽다"고 칭찬했다. 송명원 선생님은 "사실 아이들이 시를 매번 잘 쓰는 건 아니다(웃음). 이상하게 어느 날 깜짝 놀랄 만한 시가 탄생한다"고 귀띔했다.
어느덧 북지분교 어린이들에게 시 쓰기는 일상이 됐다. "친구랑 놀다가도 시를 쓰고 싶단 생각이 퐁퐁 떠올라요. 요샌 은행나무를 주제로 시를 쓰고 있어요. 소년조선일보 특선을 노리고 있죠. 호호." (최다현) "저희 집은 산골이라 도시 친구들은 모르는 게 많아요. 앞으로 강가에서 수영하고 노는 이야기 등을 시에 풀어낼 테니 기대해주세요!" (유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