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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바그너 탄생 200주년] 시간 흘러도 빛나는 거장의 오페라

2013/05/21 16:38:49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음악과 철학을 공부한 그는 삼류 지휘자, 합창장, 편곡자 등을 두루 거쳤어. 1834년 오페라 ‘요정’(Die Feen) 등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지. 1840년에 완성한 ‘리엔치’가 2년 뒤 독일 남동부 드레스덴의 유서 깊은 작센 궁정 극장에서 상영, 성공을 거두면서 비로소 바그너란 이름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단다.

이후 그는 작센 궁정 극장 지휘자가 됐어. ‘탄호이저’(1844년) ‘로엔그린’(1848년) 등 굵직굵직한 명작 오페라를 선보이기도 했지. 그는 모든 작품의 대본을 직접 쓸 만큼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어. 또 자신의 작품을 기존의 오페라와 구분해 극시(劇詩)·음악·무용의 총체 예술인 ‘악극’이라 불렀지.

하지만 1849년 자신이 가담한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스위스 등지에서 도피생활을 하게 돼. 무려 12년 넘게 말이야. 하지만 바그너 선생님은 작품 구상과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어. ‘니벨룽겐의 반지’(1854~1874년), ‘트리스탄과 이졸데’(1859년) 등이 이때 탄생했지.

1862년 드디어 추방 명령이 해제됐고, 1864년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의 초청으로 그는 뮌헨에 정착하게 됐어.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를 무척 아꼈다고 해. 특히 ‘로엔그린’에 깊은 감명을 받은 왕은 바그너를 일컬어 ‘독일 정신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우곤 했대. 바이에른의 소도시 바이로이트에 바그너 전용 극장이 들어서는 데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나.

1882년 발표한 ‘파르지팔’을 끝으로 바그너 선생님은 1883년 2월 하늘나라로 가셨어. 오늘날 바이로이트에선 매년 7월 그를 기리는 축제가 열리고 있단다.

[바그너의 대표작]

탄호이저(Tannhauser)|
영혼과 육체의 싸움을 노래하는 ‘낭만적 오페라’. 중세 성배 기사 탄호이저의 사랑과 갈등, 구원을 다루고 있다. ‘순례자의 합창’ ‘저녁별의 노래’ 등이 대표곡이다.

로엔그린(Lohengrin)|중세문학에 등장하는 ‘백조의 기사’를 소재로 삼은 작품. 백조를 타고 나타난 기사 ‘로엔그린’은 남동생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백작의 딸 엘자를 위해 결투에 나선다. 이후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엘자가 금기를 어겨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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