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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다툼이 잦아지고 성적은 더 떨어졌다. 박군은 “엄마는 성적을 못 올리면 미래가 어두울 것이라고만 얘기하고 뭘 해도 재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박군은 손목을 그었다.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그었는데, 또 엄마가 저를 방해했어요. 정신이 들어보니 혼자 병실에 누워 있는 거예요. 다시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통계청이 밝힌 우리나라 10대 청소년의 사망원인 중 1위는 자살이다. 2011년 한 해에만 373명의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체 청소년 사망자의 26.5%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국가 중 1위인 이 수치에 대치동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작년 2월 자살한 한 대치동 학생은 “학원 다니기 힘들다”는 유서를 남겼다.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이 학생의 친구는 4월 6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친구는 겨울방학 사이에 언어, 수리, 외국어 학원 세 군데를 다니고 방학인데도 매일 학교에 나가 자율학습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대치동)에서 그 정도로 안 하는 사람은 없죠. 저만 해도 그 전날 자살했던 친구와 함께 밤12시 다 돼서 집에 들어갔어요.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친구는 공부하기 싫어했는데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 많아 억지로 학원에 다녔던 게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정철희 건국대 미래교육원 교수는 “대치동에는 자녀 교육 때문에 대치동에 전세를 얻은 사람이라는 뜻의 ‘대전족’이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작년 7월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조사한 ‘부동산 시장 동향’을 보면 자기 집이 있는데도 전세를 얻어 사는 사람의 비율이 강남구에만 26.4%에 달한다.
2011년 3월 자살했던 권모(당시 18살) 학생의 부모는 지난 4월 16일 기자와 만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대치동으로 이사해왔던 것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라고 울먹였다. 권군의 가족은 대치동으로 이사 오기 전 평범할 정도로 화목한 분위기였다. 권군의 어머니는 “한두 달에 한 번은 서울 근교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아이가 춤을 배우고 싶대서 방송댄스 스쿨에 등록해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치동에 이사 온 후 온 가족의 신경은 권군의 성적에 맞춰졌다.
“저는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집에 눌러앉아 하루종일 학부모 모임에 참석했다가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 주고 오는 일만 반복했지요. 아이 성적이 떨어지면 학원 수업이 별로인가 싶어 학부모들 추천을 받아 여기저기 학원을 옮겨 다녔어요. 자살 전에 6개월간 옮긴 학원만 3군데예요.” 대치동에서 거주하는 이유가 교육 때문이니만큼 대치동 학생이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인정받는 가치는 오로지 성적뿐이다. “우리 아이는 성실했어요. 하지만 성적이 그만큼 나오지 않았죠. 성실함을 좀 더 칭찬해 줬어야 해요.”
대치동에 밀집한 아파트에서는 “매일같이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도 나온다. 지금은 자녀 3명을 모두 서울대, 미국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학에 보내고 대치동 아줌마의 ‘리더’로 남은 김지영(가명·54)씨는 “교육비 문제 때문에 부부싸움도 많이 하지만 무엇보다 자녀와 학부모 간의 싸움이 심각해질 때가 많다”고 전했다. 이근영 연구원은 “부모 자녀 간의 의사소통 불통의 경험이 많을 때 자녀의 자살 생각은 훨씬 늘어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