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王)이라는 호칭이 사용되기 이전, 사람들은 우두머리를 어떻게 불렀을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에서는 단군왕검이라는 말로 우두머리를 불렀습니다. 단군은 제사장을, 왕검은 정치 지배자를 나타내는 말이에요. 즉 단군왕검은 종교와 정치 모두를 아우르는 지배자임을 의미하죠.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에선 우두머리를 왕이라 불렀습니다. 고구려의 시조를 동명성왕, 백제의 시조를 온조왕으로 칭하는 것에서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죠.
하지만 신라의 경우엔 처음부터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는 거서간이라 불렸는데, 거서간은 귀한 사람이란 뜻이에요. 이후 제2대 남해는 차차웅이라 불렸어요. 차차웅은 무당을 뜻하는 말로, 우두머리가 제사장의 역할까지 했던 걸 짐작할 수 있죠.
이가 많은 사람이란 뜻의 이사금이란 용어도 쓰였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우두머리를 한다는 의미인데요. 눌지 때부터는 우두머리란 뜻의 마립간이란 호칭을 사용했으며, 제22대 지증왕 때 왕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비로소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됐어요.
고려시대엔 중엽까지 황제를 뜻하는 폐하라는 칭호를 사용했지만, 몽골의 침입을 받은 후 황제보다 낮은 격인 왕이라고 불렀어요. 조선시대 들어와서도 왕으로 불렀지만, 시호(제왕 등이 죽은 후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해 붙인 이름)는 조(祖)나 종(宗)이라고 표현했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스스로를 황제라 칭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힘이 약해 청나라·일본·러시아 등 다른 나라의 간섭을 많이 받았는데요.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가 자주 국가임을 나타내기 위한 고종의 특별 조치였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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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남자만 하는 게 아니에요?
언제나 남자만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던 것은 아닙니다. 남자 못지않은 뛰어난 지도력으로 나라를 다스리던 여자들이 있었어요.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은 선덕여왕이었습니다. 선덕여왕은 제26대 진평왕의 맏딸로 태어나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 됐어요. 왕위에 올라 바르고 선한 정치를 펼쳤으며, 당나라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신라의 불교 문화를 발전시켰죠. 또 첨성대와 황룡사 9층 탑을 세웠어요.
중국에서는 690년, 황후였던 측천무후가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측천무후는 중국 유일의 여황제죠. 그는 나라 이름을 당에서 주로 바꾸고, 전국 각지에서 새로운 인재들을 모았으며, 뛰어난 건축물을 많이 지었어요.
영국에선 엘리자베스 1세가 1588년 여왕이 됐습니다. 그는 당시 최대 강국이었던 에스파냐 무적함대를 물리쳤으며, 상공업과 무역을 장려했고, 인도에 동인도 회사를 세워 영국이 아시아에 진출하는 기반을 마련했어요. 이밖에 1762년 러시아 황제의 자리에 올라 러시아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예카테리나 2세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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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바빠, 왕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