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편 중독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다 못한 청나라 황제는 임칙서라는 신하를 시켜 영국 상인들의 아편을 빼앗아 없애도록 했어요. 그러자 영국은 이를 문제 삼아 아편 전쟁을 일으켰지요. 영국의 막강한 군사력에 청나라는 어이없이 무너져 버렸어요. 그 결과 청나라는 영국에 많은 돈을 물어 주고, 영국 상인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항구도 열어야 했지요.
영국에 돈을 물어주기 위해 청나라는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거둬들였어요. 이때 홍수전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청나라를 몰아내고 모두가 평등하게 잘사는 태평천국을 만들자고 백성들에게 주장했어요. 홍수전이 이끈 태평천국 세력은 백성들의 많은 지지를 얻었지만, 서양 군대의 도움을 받은 청나라 군사들에게 진압당하고 말았어요. 이후 청나라의 몇몇 장군들이 서양의 발달된 기술을 받아들여 군사 기술을 익히고 무기 공장을 세우자는 '양무운동'을 펼쳤어요. 하지만 양무운동은 효율적으로 계획된 운동이 아니었어요. 의식이나 제도는 바꾸지 않고 서양식 기술만 들여오자는 것이었지요. 결국 청나라는 1894년에 일본과의 청일 전쟁에서도 졌고 양무운동 역시 실패하고 말았어요.
청일 전쟁의 패배는 청나라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어요. 지식인들은 일본처럼 의회를 만들어 입헌 군주제를 하자고 주장했지만, 당시 청나라의 권력을 잡고 있던 서태후의 반대로 물거품이 되었지요. 서태후는 무술을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의화단'을 이용해 서양 세력을 몰아내려 했어요. 의화단은 서양 사람들을 공격하고, 그들이 만든 시설물을 파괴했어요. 하지만 의화단이 유럽의 연합군에 지면서, 서양의 간섭은 더 심해졌지요. 청 왕조는 철도를 국가 소유로 한 후 그것을 담보로 서양에서 돈을 빌려 경제를 살리고, 나라도 더 확실하게 지배하려 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반대해 결국 1911년 전국에서 혁명이 일어났어요. 이 혁명을 '신해혁명'이라고 해요. 신해혁명 후 혁명을 이끈 쑨원은 임시 대총통이 되었어요. 청나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중화민국이 탄생했어요.
일본의 메이지 유신|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였던 청나라가 아편 전쟁에서 힘없이 졌다는 소식은 일본에게 큰 충격이었어요. 서양에 함부로 맞섰다가는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일본은 서양이 물건을 팔고 싶다고 했을 때 계속 거절해 왔어요. 하지만 대포를 앞세운 미국의 함대가 오자 할 수 없이 조약을 맺었지요. 이후 서양의 다른 여러 나라도 무력을 앞세워 조약을 맺자고 졸랐고, 일본에 불리한 조약이었지만 들어줄 수밖에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