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요크 가문 출신의 리처드 3세는 형(에드워드 4세)과 조카(에드워드 5세)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하지만 왕이 된 지 2년 만에 장미전쟁(1455~ 1485년)에서 랭커스터 가문의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헨리 7세)에게 패해 숨졌죠. 장미전쟁은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이 왕위 다툼을 벌인 내전을 일컫는 말이에요.
영국 시인 겸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년)는 희극 '리처드 3세'에서 그를 꼽추이자 '사악한 왕'으로 묘사했습니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인문학자인 토머스 모어(1477~1535년)도 '리처드 3세'란 전기에서 그를 '폭군'으로 그렸어요.
하지만 장미전쟁에서 승리한 랭커스터 가문이 튜더 왕조 시대를 열면서 리처드 3세에 대한 이미지가 왜곡됐단 학설도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와 토머스 모어 모두 튜더 왕조 시대 사람이었고, 그 이전 기록들에선 용맹함과 출중한 지략을 갖춘 전사로서 리처드 3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게 그 근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