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8 18:20:25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자 루이 16세는 성직자와 귀족에게도 세금을 걷으려 했어요. 그러자 성직자와 귀족들이 거세게 항의했고 루이 16세는 성직자·귀족·평민 신분의 대표로 구성된 삼부회를 열어 세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 때문에 더 큰 문제가 생기고 말았지요. 평민 대표들이 ‘국민 의회’를 만들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자 귀족들이 회의장의 문을 열어주지 않은 거예요. 화가 난 국민 의회는 회의장 근처 테니스 코트에 모여 헌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의회를 해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프랑스 혁명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지요.
결국 프랑스 정부는 국민 의회를 힘으로 누르기 위해 파리로 군대를 불러 모았어요. 파리 시민들은 이 소식에 크게 흥분했어요.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으로 몰려가 총과 대포를 쏘고 불을 지르고, 왕권의 오랜 상징과도 같았던 바스티유를 차지했어요. 그리고 국민 의회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하며 ‘자유와 법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내용의 인권 선언을 발표했어요. 하지만 프랑스 신분 체계가 무너질 것을 우려한 루이 16세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가뜩이나 지독한 흉년으로 굶주려 있던 파리 시민들은 다시 크게 분노했어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탐탁지 않아 했던 시민들은 왕비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다는 거짓 소문까지 만들어 퍼뜨렸어요. 굶주림에 지친 부녀자들이 앞장서서 베르사유 궁전으로 몰려갔고, 베르사유 궁을 점령당한 루이 16세는 결국 인권 선언을 인정하는 서명을 했어요.
시민들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살고 있던 왕과 왕비를 파리에 있는 튀일리 궁으로 옮겨 그들을 감시했어요. 혁명이 두려웠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변장을 하고 오스트리아로 도망가려다 붙잡히고 말았어요. 국민을 버린 왕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국민들은 더욱 분노했지요.
한편 이웃나라들은 혁명의 불길이 자신들에게도 번질까 봐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연합군은 혁명을 막기 위해 프랑스를 공격했지요. 처음에는 프랑스가 계속 패했지만,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려는 시민들이 파리를 몰려들며 상황은 바뀌었어요. 시민들은 현재 프랑스 국가가 된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용감하게 싸워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어요.
시민들은 루이 16세와 왕비가 오스트리아를 부추겨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했어요. 왕에 대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어진 시민들은 프랑스를 왕이 없는 공화정이라 선포했고, 1793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어요.
프랑스 국왕이 처형을 당한 사실은 이웃나라에 큰 충격을 주었어요. 그들은 다시 동맹을 꾸려 프랑스로 쳐들어왔지요. 프랑스 안에서도 혁명에 반대하는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어요. 이 시기 권력을 잡고 있던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가차없이 죽이고 젊은 남자들을 강제로 군대에 보내는 ‘공포 정치’를 실시했어요. 그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불만은 점점 커졌고 결국 로베스피에르도 국민들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프랑스는 또다시 혼란에 빠졌어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빛을 잃어 갔지요. 이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나폴레옹이 군대를 앞세워 정권을 차지하고 국민투표로 황제에 오르면서 프랑스 혁명은 막을 내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