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3 03:10:27
서: 부담을 극복하기 위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었나요.
홍: 감독은 외롭고 고독한 자립니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사실상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되도록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평소 코치진을 비롯한 주위 사람과 대화를 많이 나누며 제 생각과 고민을 그들과 공유하려 애썼어요.
서: 대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올림픽 직후 한동안 '홍명보식(式) 소통 리더십'이 화제였습니다. 평소에도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인가요.
홍: 선수들을 만나는 장소가 대부분 운동장이다 보니 경기 관련 얘긴 많이 합니다. 선수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지시도 내리죠. 하지만 훈련장 밖에서 사적 대화를 많이 주고받진 않습니다.
서: 감독으로서 본인이 지닌 장점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합니다.
홍: 제 눈높이는 늘 우리 선수, 특히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마음을 헤아리려고 신경 쓰죠.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면 선수단 분위기는 자연스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서: 정작 홍 감독 본인은 선수 시절 벤치를 지킨 기억이 별로 없을 텐데요.
홍: 중학교 때 이후로는 거의 없었죠. 중학생 땐 신체 조건이 별로 안 좋았어요. 키가 작고 몸도 약해 '어느 날 갑자기 코치 선생님이 운동 그만하고 집에 가라고 말씀하시면 어쩌지?' 하고 늘 조마조마했습니다. 매일 '내일도 축구 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을 안고 운동해야 했고, 당시 설움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벤치 지키는 선수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서: 동메달 결정전이 한·일 간 대결로 치러지면서 국민적 관심이 대단했습니다. 선수들에게 따로 주문한 게 있었습니까.
홍: 국가대표로 뛰면서 한·일전을 많이 겪어봤기 때문에 대(對)일본전을 풀어가는 방식은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일본 선수는 일단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납니다. 그들이 기술 발휘할 여지를 최대한 주지 않는 게 관건이에요. 1대 1 상황에서 강하게 압박하면 움츠러드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일본 선수의 특징이죠. 그래서 경기 직전 '적극적인 압박형 수비'를 주문했습니다. 팀 차원에서 볼 때 일본 축구는 좁은 공간에서의 압박이 좋은 편입니다. 그 공간에 들어가면 공을 뺏길 가능성이 높아지죠. 때문에 제가 선수이던 시절부터 일본과 경기를 치를 땐 '뒷공간 노리기 전략'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이번에도 그 방법을 적용했고요.
서: 평소 선수들에게 '정신력'을 강조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때 정신력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홍: 제가 생각하는 정신력은 '자기 자신을 조절하는 힘'입니다. 공이 눈앞에 있고 태클을 하고 싶을 때 공을 좀 더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자신을 제어하는 능력이 바로 축구 선수가 지녀야 할 정신력이죠. 같은 맥락에서 불필요하게 상대를 걷어차거나 파울을 저질러서도 안 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선수들에게 그 부분을 여러 차례 강조했어요. 다행히 선수들이 잘 따라줬고 개개인의 전술과 팀의 전략이 잘 맞아떨어지면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습니다.
서: 올림픽 직전, 병역 기피 논란에 휩싸인 박주영(27) 선수 발탁을 놓고 뒷말이 많았습니다. 당시 심경이 복잡했을 것 같은데요.
홍: '감독으로서 이번 일로 후회하고 싶진 않다'는 생각에만 집중했습니다. 병역 문제 때문에 박주영 선수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 떠밀려 박 선수를 팀에 기용하지 않으면 올림픽이 끝난 후 분명 '그때 뽑았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할 것 같았어요. 박 선수와 비슷한 연령대의 선수 중 포지션이 같은 선수가 많지 않았던 점도 제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대표팀은 '결과'로 말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