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롤루스 대제가 세상을 떠난 뒤 프랑크 왕국에서는 영토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어요. 그러면서 프랑크 왕국은 동프랑크·서프랑크·중프랑크로 나뉘게 되었고, 이는 훗날 독일·프랑스·이탈리아로 발전하게 되었답니다.
◇영주의 지배 속에 평생을 살았던 농노
프랑크 왕국이 셋으로 나뉜 후, 서유럽은 북쪽의 이민족이 끊임없이 침입해 오는 등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가 이어지고 있었어요. 그러자 귀족들은 적의 침입을 막고 재산을 지키기 위해 튼튼한 성을 쌓았어요. 그리고 그 성의 주인을 '영주'라고 불렀어요.
"영주님, 다른 민족들로부터 저희를 보호해 주십시오. 전쟁이 나면 저희들을 성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
"좋다. 그 대신 나에게 세금을 바치고, 나를 위해 농사를 지어라."
힘이 없던 농민들은 영주에게 보호를 받으려 했어요. 영주의 땅에서 보호를 받으며 사는 대신 농민들은 영주에게 세금을 내고, 영주의 논과 밭에서 일해야 했지요. 이 때문에 중세 시대의 농민을 노예라는 뜻이 담긴 '농노'라고도 불렀어요. 또한 하나의 마을로 이루어져 영주가 보호하고 다스리는 땅을 '장원'이라고 해요. 농노는 약간의 재산을 가질 수는 있었지만, 평생 장원을 떠날 수 없었어요. 이렇게 농민들이 영주의 지배를 받는 제도를 '봉건 제도'라고 해요.
◇피라미드 같은 중세 유럽의 신분 제도
영주 위에는 왕이 있었고, 아래로는 기사가 있었어요. 왕은 넓은 땅을 혼자 다스릴 수 없어 신하들에게 땅을 나누어 맡겼지요. 왕에게 땅을 받은 신하는 영주가 되어 자신의 장원을 마음대로 다스리는 대신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전쟁이 나면 왕에게 자신의 군사를 내주었어요. 영주 아래의 기사도 작은 영주가 될 수 있었어요. 기사들이 충성을 맹세하면 영주는 그 대가로 자신의 땅을 나누어 주었지요. 성직자도 교회의 토지를 다스리는 영주가 되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왕과 영주·기사·농노로 이루어진 중세 유럽의 신분 제도는 마치 피라미드와 같았어요.
"기사는 무술을 닦으며 명예를 지켜야 해."
영주와 기사들은 사냥이나 전쟁 훈련만 할 뿐 농사를 짓지 않았어요. 충성을 맹세한 영주와 기사들의 관계는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졌지요. 자식들은 땅을 그대로 물려받아 풍족하게 누렸어요. 장원 안에서 영주의 지배권은 점점 더 강해져 마침내 왕과 큰 차이가 없게 되었답니다.
|세계사 통합 교과|체육 기사들의 검술
검술은 투구와 갑옷을 갖추고 검을 사용하여 싸우는 기술로, 중세 기사들이 꼭 갖추어야 할 능력이었어요. 그렇다고 기사만 검술을 익혔던 건 아니에요. 농민 중에서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기본적인 검술을 익히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검술에서 방패는 검 못지않게 중요해요. 방패를 사용하면 몸의 절반 이상을 보호할 수 있고, 몸을 방패 뒤에 숨겼다가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한 쪽으로 재빨리 공격할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방패 자체가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답니다.
검술이 오늘날의 운동 경기로 변화된 것이 바로 펜싱이에요. 펜싱은 철망으로 된 마스크를 쓰고 찌르기와 베기 등의 동작으로 승패를 겨루는데, 유럽 기사들의 검술에서 전투적인 부분을 빼고 검 끝에 솜방망이를 달아 안전한 운동 경기로 모습을 달리한 것이랍니다.
펜싱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될 만큼 인기가 있어요.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우리나라 펜싱 대표팀이 메달 6개로 역대 최고 성적을 내며, 국민들의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답니다.
|세계사 NIE| 나는 누구일까요?
중세 시대에는 신분이 어떻게 나뉘어 있었을까요? 아래의 설명을 읽고, 알맞은 그림을 찾아 선으로 연결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