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2 15:37:31
“과학대중서 분야 스테디셀러 ‘과학콘서트’(정재승 글·동아시아)는 2003년 출간 당시 20대 초·중반 독자를 겨냥한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이 책을 초등 5·6학년이 읽어요. 학생들이 옛날에 비해 엄청나게 똑똑해진 거죠. 반면, 요즘 학생들은 비대해진 지식의 양과 질이 무색할 정도로 정작 ‘나’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정글 같은 무한 경쟁 사회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탐색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죠.”
하 교수는 “요즘 ‘너 많이 아팠구나’ 유(類)의 정신·심리학 계통 서적이 쏟아지지만 막연한 위로보다는 청소년 스스로 ‘어디가’ ‘왜’ 아픈지 아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늘이 파란가요? 1 더하기 1은 2인가요? 청소년기엔 이처럼 뻔한 질문에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항하고 싶어집니다. 문제는 자신도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모른다는 데 있어요. 바로 그 점 때문에 청소년기에 자주 나타나는 정신적 문제의 증상과 원인은 최대한 객관적 입장에서 알려줘야 합니다. 이후 행동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거죠.”
◇우울증·게임중독… 원인은 ‘낮은 자존감’
하 교수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정신적 문제는 대개 ‘자존감’과 관련돼 있다.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우울증·게임중독·강박 등도 마찬가지다.
청소년 우울증은 ‘현실과 이상 간 괴리’가 그 원인인 경우가 많다. 하 교수는 “자신이 세운 이상적 목표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울한 기분은 극대화된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요즘은 고교 3년간의 내신성적 누계로 대학 진학 여부가 결정되다 보니 시험에서 한 번 삐끗하면 목표 대학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점점 멀어지고 현실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는 거죠. 그 단계에선 누구나 우울증에 시달리게 마련이에요.”
하 교수는 “게임중독에 빠지는 청소년 중에도 자존감 낮은 아이가 많다”고 설명했다. 가장 흔한 유형은 성적이 나빠 학교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집에서도 가족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다. 이들에게 마법사도, 전사도 될 수 있는 게임 세계는 그야말로 별천지다. 학교 성적과 관계없이 게임 능력만으로 칭찬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패와 좌절, 온몸으로 부딪쳐 이기길”
하 교수는 청소년을 향해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며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려움은 누구나 겪을 수 있습니다. 자꾸 깨져봐야 이겨낼 힘도 생기죠. 청소년기는 ‘연습 기간’이에요. 마냥 자책하며 열등감에 시달릴지, 아니면 본인의 노력으로 ‘우울함의 동굴’에서 탈출할지는 온전히 자기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어 그는 동굴을 벗어날 구체적 방안을 몇 가지 제시했다. “중독 현상은 달리 집중할 만한 대상이 없을 때 나타납니다. 그럴 땐 또래끼리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세요.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적정 수면 시간은 학습 효과 측면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해요. 인간의 뇌는 잠자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낮 동안 입력된 정보를 장기적으로 기억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혹자는 ‘잠이 곧 창조성의 원천’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비틀스의 명곡 ‘예스터데이(Yesterday)’가 멤버 폴 매카트니(70)의 꿈속 멜로디였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죠.”
하 교수는 “청소년이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려면 학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학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건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능력이에요. 도와주고 싶어도 좀 참고 아이 혼자 할 수 있도록 놔두세요.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은 부분이 생기면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게 최선입니다. 세상은 결국 혼자 살아야 하고 모든 일은 본인의 판단에 따라 헤쳐나가야 한다는 사실, 명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