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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인터뷰] "中·日 보다 잘생긴 '한국땅거미'도 내가 찾았죠"

2012/05/21 09:38:26

◇미개척 분야 ‘거미’를 연구하다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김 박사는 6·25 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가난했지만 성적은 늘 1등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는 중학생의 가정교사로 채용돼 거기서 먹고 자며 공부했다. 그 집이 바로 ‘생물학의 일인자’로 불리던 강영선 박사(당시 서울대 동물학과 교수)의 집이었다. “원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가려고 원서까지 썼어요. 그런데 강 박사님이 제 원서를 찢어버리면서 무조건 동물학과로 지원하라는 거예요. 거의 반강제로 동물학과에 진학하게 됐죠.” (웃음)

본격적으로 거미 연구에 나선 건 동국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 1971년부터다. “거미가 ‘환경 지표동물’이거든요. 거미의 존재 여부를 통해 환경오염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죠. 앞으로 환경오염이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를 것 같아서 전부터 거미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거미를 연구하겠다’고 했더니 다들 말리더라고요. 국내에선 미개척 분야라 자료도 없었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알아서 연구해야 했죠.”

◇간첩으로 몰리고 독거미에 물리고

그는 거미를 채집하기 위해 전국의 산과 섬을 밤낮으로 돌아다녔다. “주로 밤에 거미를 찾아다니다 보니 도둑으로 오해받기도 했어요. 시커먼 옷을 입고 야밤에 남의 집 담벼락 밑을 기웃거리니 그럴 만도 하죠. 간첩 신고를 당한 적도 많아요. 한번은 소백산에서 거미 채집을 하다 근처 사과밭 주인이 절 간첩으로 오해해 신고를 했어요. 군인 3000명이 몰려왔었죠. 백령도에 갔을 땐 지뢰를 피해 채집을 다니느라 진땀을 뺐어요. 지뢰가 묻힌 지역일수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신종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거든요. 실제로 백령도에서 신종 2개, 국내 미기록종 2개 등 총 4개 종을 발견했지요.”

어두운 산속을 헤매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거나 넘어져 다친 적도 많았다. “그땐 머릿속이 온통 거미 생각뿐이라 아픈 것도 잘 못 느껴요. 강력한 독을 지닌 거미에 물린 적도 있어요. 미국 미시시피대학에 갔다가 ‘검은과부거미’를 잡았는데 손을 물렸죠. 혈관에 물리면 2시간 만에 죽음에 이르는 독성이 강한 거미예요.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고 이틀간 몸살을 앓았어요.”

◇세계 최초로 거미박물관 세워

거미를 연구한 지 40여년, 그가 세계 최초로 발견한 거미만 140여종에 이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국땅거미’란다. “제가 최초로 발견한 신종이 1985년 학계에 발표한 한국땅거미예요.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선 땅거미가 발견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일본과 중국 학자들을 만났는데 ‘한국에는 청정지대에 사는 땅거미가 없다’며 비아냥거리는 거예요. 오기가 생겨서 전단지를 만들어 현상금을 내걸고 땅거미를 공개수배했어요. 그런데 진짜 연락이 온 거예요. 땅거미를 봤다는 장소를 뒤졌더니 진짜 땅거미가 있었어요. 그것도 신종이었죠. 생김새도 일본이나 중국 땅거미보다 훨씬 미남이었고요.” (웃음)

김 박사는 한국땅거미가 발견된 곳에 2004년 세계 최초로 거미박물관을 세웠다. 박물관엔 그가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모은 거미 표본 30만점을 비롯해 수천 점의 곤충 표본, 수백종의 광물과 화석이 전시돼 있다. 2009년엔 이 박물관을 동국대학교에 기증했다.

“사람들은 거미를 징그럽고 무서운 동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미는 버릴게 하나도 없는 유용한 동물입니다. 거미의 독은 마취제로 사용됩니다. 강철보다 강한 거미의 줄은 고강도 섬유로 쓰이죠. 방탄복 중에 제일 좋은 건 거미줄로 만들어졌답니다. 친환경 농사에도 거미를 이용할 수 있어요. 각종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농약이 필요 없죠. 거미에 대해 알고 싶다면 ‘거미야 놀자’를 읽어보세요. 거미박물관을 찾아와도 좋아요. 거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겁니다.”

김주필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나라 거미 이야기

△한국땅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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