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6 16:00:08
“어린이들에겐 그림의 주제를 정해주는 게 별 의미가 없어요. 어차피 마음대로 그리거든요. (웃음)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그리고 싶은 걸 마음껏 그려보라고 했어요. 아이들이 재미있는지 자꾸 언제 또 그리느냐고 묻네요.”
밥장 씨가 동네 아파트에 벽화를 그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아파트 벽이 하나의 캔버스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아파트 벽에 그림을 그려 일상적인 공간에 특별함을 더하면 주민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지난해 아파트대표자 회의 때 제안했죠.”
당시 그는 벽화에 자신이 평소 개발해 온 창작 캐릭터들을 담아낼 생각이었다. 벽화 작업에 막 나서려는데 초등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중 한 어린이가 “제 얼굴 좀 그려주세요!”라고 말을 건네왔다. 주변에 서 있던 어린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저도요!”를 외쳤다. 아이들의 요청에 그는 급히 벽화 주제를 수정했다.
“완성작을 본 주민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았어요. 덕분에 올해도 벽화 작업을 할 수 있게 됐죠. 특히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어린이·청소년 등 주민들이 벽화를 직접 그리도록 했어요. 그림 그리는 재미를 느끼고, 동네에 애착을 느낄 수 있도록요. 전 다듬어주는 역할을 맡았죠.”
사실 그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 잘 나가는 대기업 회사원이었다. 하지만 2003년, 서른세살 때 돌연 회사를 그만뒀다. “요즘 평생 다니는 직장이 없잖아요.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막상 회사를 나와보니 힘들더군요.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들도 겹쳐 일어나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어요. 그때 엽서에 그림을 한두 장씩 그리곤 했죠.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늘어났고, 어느 순간 마음도 편해졌어요.”
그는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화가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해 실력도 조금씩 늘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 찾아간 출판사에선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5년의 어느 날, 드디어 그는 한 출판사와 책을 내기로 계약을 맺었다. 회사원 ‘장석원’ 씨가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