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3 17:45:13
△경주마의 감독이자 아버지, ‘조교사’
지난 20일 오후 3시 서울경마공원(경기 과천시 주암동) 51조 마방. 30마리의 말이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며 먹이를 먹고 있었다. 김 조교사는 애정이 어린 눈빛으로 이들을 쳐다봤다. 이어 자신이 관리하는 말인 ‘미스터 스마일' 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먹는구나. ‘미스터 스마일'.”
먹이를 먹던 미스터 스마일은 기분이 좋은 듯 선홍빛 잇몸을 드러내며 김 조교사에게 애교를 부렸다. 김 조교사는 “어미가 얘(미스터 스마일)를 낳자마자 일주일 만에 저세상으로 갔다. 그 때문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이곳으로 왔고 내 손에서 성장했다. 내가 (미스터 스마일의) 아빠나 다름없다” 라고 했다.
경주마가 ‘선수'라고 했을 땐, 조교사는 ‘감독'이다. 말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훈련하고 영양 상태를 수시로 관리한다. 어떤 말에 어떤 기수를 태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실제 경주에서 상대편 경주마를 분석해 어떻게 경주를 전개할지 작전을 짜는 것도 조교사의 임무다. 김 조교사는 “정확히 말하면 감독의 역할이 맞긴 하지만, 애정 없이 우수한 말을 길러낼 순 없다. 말과의 교감도 필요하단 얘기다. 이들에겐 내가 아빠다”라고 했다.
△그에겐 운명이었던 말(馬)과의 만남
김 조교사가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건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의 직업이 조교사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본 게 커다란 말들뿐이었죠. 아버지를 도와 먹이를 주고 훈련도 시키고…. 어렸을 때부터 봤으니 저에겐 말이 ‘친구'나 다름없었죠. 청소년기를 거쳐 스무 살이 될 때까지만 해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었어요. 말과 관련된 직업을 갖겠단 생각도 없었죠. 스무 살 무렵엔 건축공학도를 꿈꾸며 대학에 진학했어요. 하지만 1년 정도 해보니까 이 분야가 나와 맞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결국 이곳(마방)으로 돌아오게 됐죠. 아마도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말과 함께하는 것'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는 21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마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마필관리사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다. 이후 조교 승인 시험과 조교보(마방 총괄 팀장) 시험에 통과했다.
조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건 지난 2006년이다. 김 조교사는 “기수는 경력이 8년 이상 되면 조교사 시험에 응시할수 있다. 마필관리사부터 시작했을 땐 꼬박 12년이 걸린다. 긴 시간이었지만 경험을 통해 관련 지식을 쌓았던 것같다. 덕분에 제법 어렵다는 조교사 시험에 단번에 붙었다”라며 웃었다.
△‘최고의 말(馬)' 길러내는 게 최종 목표
하지만 조교사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말의 뒷발에 차여 병원에 실려가는 일은 숱하게 많았다. 자신이 관리하던 말이 이유 없이 아픈 일도 잦았다. 김 조교사는 “말이 내 몸도 아프게 하고 마음도 아프게 했다. 그나마 정성스레 관리한 말이 좋은 성적을 거두거나 경주 중에 다치지 않고 완주를 해줘 견딜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 조교사는 현재 ‘40대 조교사 돌풍'을 이끌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 조교사 부문에서 11승을 거둬 다승 3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그의 성적은 우리나라 최초로 통산 1000승을 거둔 신우철 조교사(60세)와 동률이다.
그의 꿈은 21세에 경마계에 입문했을 때부터 하나였다. 바로 ‘최고의 말을 길러내는 것'이다. “조교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입니다. 물론 말의 나이로 2~5세까지가 최고 절정기라고 했을 때 그 안에 최고의 말을 키우기란 쉽지 않겠죠. 하지만 끝까지 해보려고요. 제 손으로 키운 말이 우승했을 때의 감격을 또다시 경험하고 싶거든요.”
인터뷰를 마친 그는 곧장 마방으로 향했다. 뒷짐을 진채 여기저기 말의 상태를 확인하던 그는 자연스레 ‘아빠 미소'를 지었다. 조교사는 흔히 ‘말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의 미소는 조교사가 왜 말의 아버지라 불리게 됐는지 단번에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