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1. 이다은(2011년 9월 2일)
유럽 거리 하면 대부분 '길거리 악사'를 떠올린다. 오늘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거리가 그랬다. 동그라미 회원들이 악사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거리 연주회의 목적은 '수제 봉투 판매'. 회원 어머니들이 짬짬이 시간을 내어 직접 만드신 봉투였다.
내 전공(가야금)이 편성에서 빠지는 바람에 이날 내 몫은 '물건 판매'였다. 추석 연후 직전이어서 그런지 거리는 오후 내내 인파로 붐볐다. 우린 바닥에 봉투를 죽 늘어놓은 채 연주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자, 매일 자정을 넘겨 계속된 연습이나 에어컨 없는 연습실에서 고생하던 일 등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예쁜 봉투 사세요, 석 장에 1만원입니다. 수익금은 전액 캄보디아 시엠립 섬폰피업 중·고교 도서관 건립에 쓰여요." 하지만 만만찮은 가격 때문인지 선뜻 지갑을 여는 관객은 많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날 보던 도성이가 귀엣말을 했다. "커플을 공략해봐. 혼자 다니는 사람들은 잘 안 사거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와프 측이 요구한 도서관 건립 비용은 300만원. 미리 주문 제작한 봉투까지 팔고 나면 목표액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달부터 회원들이 벌인 중고 영어책 모으기 캠페인 결과도 나쁘지 않다. 당초 목표치인 300권을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캄보디아로 날아가는 것뿐이다!
diary 2. 김홍영(2012년 1월 1일)캄보디아에서 출발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내내 섬폰피업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흐뭇해졌다. 사실 날 비롯해 동그라미 아버지 회원들은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올라타는 순간까지도 반신반의했다. '여길 가야 해, 말아야 해?' 수차례의 '맥주 토의' 끝에 결론을 내렸다. '아빠들이 봉사의 모범을 보여주자!' 음악으로 희망을 건네기 위해 밤낮으로 연습하던 아이, 밤새도록 봉투를 붙이던 아내를 생각하니 '지금도 늦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이틀 전, 캄보디아에 도착한 동그라미 일행은 공항에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숙소에서 다시 자동차로 한 시간 이상 달린 끝에 도착한 시엠립 섬폰피업 중·고교는 1960년대 우리나라 학교 모습을 연상케 했다. 교정 사이사이 펼쳐진 밭, 그 사이를 노니는 소들…. 아이들은 생경한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날 아버지 회원들의 임무는 한국에서 가져간 1000여권의 영어책을 정리하는 것. 온종일 비닐로 책 표지를 만들고 목록을 정리했다. 이튿날, 드디어 우리가 만든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개관식은 그야말로 마을 전체의 축제였다. 학교에 도착하던 순간, 우릴 환영하던 마을 주민 700여 명의 광경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이들은 개관식 현장에서 그간 갈고닦은 연주 실력을 뽐냈다. 특별히 연습한 캄보디아 국가를 연주했을 땐 도서관 전체가 들썩거렸다.
돌이켜보면 참 멋없는 여행이었다. 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데서 컵라면과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죽도록 일만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시 경험은 회원들의 마음에 튼실한 '봉사의 싹'을 틔웠다. 내년, 내후년에도 꼭 캄보디아를 다시 찾을 생각이다.
거리 연주회서 봉투 판매… 수익금 모아 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