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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샘의 근현대사 이야기] "日등에 업은 개화당 찜찜해"… 차가운 민심에 깨져버린 꿈

2012/03/29 18:06:47

청나라의 간섭이 더욱 심해지고 조정이 개화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다급해진 김옥균 등은 마침내 정변을 일으키기로 결심했단다. 우선 청과 손을 잡은 명성 황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을 끌어들였어. 그후 권력을 잡아 조선을 새롭게 바꾸기로 마음먹었지. 1884년, 드디어 서울에 우정국이 처음으로 문을 여는 날이 되었어.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명성황후 세력의 관리들과 외국 손님들이 모여 잔치를 열었어. 그때였어. 난데없이 어디선가 불길이 솟아올랐어. 그리고 불길을 신호로 개화당은 사전에 짜 놓은 각본에 의해 계획대로 움직였어. 고종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개화당은 그제야 자신들의 뜻을 밝혔어. 갑신년(1884)에 있었던 이 사건을 갑신정변이라고 해. 궁궐을 장악한 개화당은 미리 준비해 둔 14개 조항의 개혁 내용을 나라 안팎에 널리 알렸어.

◇갑신정변, ‘삼일천하’로 끝나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개화당의 세상은 3일 만에 끝나고 말았단다. 명성황후의 요청에 의해서 또다시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온 것이었어. 개화당의
대부분은 죽거나 달아나고, 개화당을 돕기로 했던 일본 군대는 도망가고 말았어. 꼬마 역사학자들, 너희는 갑신정변을 어떻게 생각하니? 갑신정변은 왜 실패했을까?

흔히들 백성들이 개화당 편이 아니라는 데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단다. 왜 그랬냐고? 생각해 봐. 근대 문물을 가지고 조선에 들어온 사람들이 누구였을까? 그렇
지, 바로 일본 사람들이야.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조선에 근대 문물을 선물하러 온 산타할아버지가 아니었단말이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조선에 들어온 일본 사람을 조선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진 않았겠지? 그러던 차에 일본의 도움을 받아 갑신정변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실망하지 않았을까? 사진관·우정국 등 근대 시설들이 백성들의 공격을 받고 사라졌어. 비록 갑신정변은 실패로 끝났지만, 신분 제도를 없애고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하자는 등의 내용은 근대화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어. 개인의 능력이 인정되고 신분 차별이 없는 세상, 더 나아가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점에서는 갑신정변의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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