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윤샘의 근현대사 이야기] 문호개방 "찬성이오", "반댈세"

2012/03/16 09:30:36

개화 사상가들은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추진할 무렵에도 서양과 교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이들은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조선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특히 오경석은 역관(譯官·통역을 하는 관리)으로 청나라를 자주 다니면서 새로운 서적을 국내에 들여오는 데 힘을 기울였어. 그리고 박규수의 가르침을 받은 김홍집·김옥균·박영효 등 은 훗날 조선을 대표하는 개화파로 성장했단다.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뒤엔 조정에서도 개화 정책을 추진했어. 일본에 수신사를 청나라엔 영선사를 보내 두 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배워오게 했지. 특히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을 갔던 김기수는 기차를 처음 보고 놀라 이렇게 말했어. “화륜이 우레와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과 비같이 날뛴다.” 그는 ‘불을 내뿜는 수레’란 뜻으로 기차를 ‘화륜거’라고 이름 붙였어. 그 후 오래지 않아 조선의 이곳저곳에 철도가 들어서게 돼 조선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자 볼거리였지.

일본과 청나라를 다녀온 관리들은 그들의 발전되고 부강한 모습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어. 특히 오랑캐로만 여겼던 일본이 서양의 앞선 기술과 문물, 제도 등을 받아들여 변화된 모습은 개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단다. 개화사상가들은 조선도 서둘러 개화를 하지 않는다면, 외국의 침입을 받을 거라고 여겼어.

◇“일본·서양은 오랑캐일 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