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13 16:29:07
오 씨는 서울 농아학교에 다녔다. 당시 수화(手話ㆍ손짓이나 몸짓으로 표현하는 의사 소통 방식)가 아닌 입술 모양을 통해 소리를 알아보는‘구화’를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바람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오 씨는 형과 누나의 교과서와 자습서를 꺼내 따로 공부했다. 그는 우체국에 근무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컴퓨터 정보처리와 전자통신기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하루는 큰누나의 책상 서랍에서 고등학교 사회과부도를 꺼내봤다. 그의 시선을 빼앗은 건 계획도시 도면. 대전의 대덕연구학원도시(지금의 대덕연구단지)였다. “그 순간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어요. 막연했지만 저 연구소에서 흰 가운을 입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부풀어올랐죠.”
막연했던 꿈은 차근차근 현실과 맞닿기 시작했다. 성공회대학교에 입학해 정보통신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숭실대학교 대학원 컴퓨터학과 석사과정을 밟게 된 것. 하지만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수업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필기와 슬라이드를 보는 것만으로는 강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1학년 때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 중 하나인 ‘어셈블리어’ 과목에선 최악의 점수인 D-를 받기도 했죠.” 하지만 그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된 친구들이 손을 내밀었다. “수업을 마친 후에 학생들이 빌려준 강의노트로 나머지 공부를 했어요. 모르는 걸 손으로 써서 물어보기도 하고요. 박사과정을 거칠 땐 지도교수님의 배려로 연구실 후배들이 노트북으로 강의 내용을 일일이 필기해주기도 했답니다. 정말 고마운 일이죠. 덕분에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