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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샘이 들려주는 한국사 이야기] "日군함 공격한 책임 지시오" 무방비 상태로 문호 개방

2012/02/19 15:38:15

◇일본, 운요호사건 빌미로 조선과 강화도 조약 맺어

1875년 일본의 ‘운요호’라는 군함이 강화도에 나타났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배가 다가오자 조선군도 대포를 쏘며 대비했어. 그러자 운요호는 강화도의 초지진을 함포 사격으로 무너뜨리고 영종도에 상륙해서 사람들을 해치는 등 난동을 부렸어. 자기들은 바닷물의 깊이를 재러 온 것뿐인데 조선에서 먼저 공격했으니 오히려 조선에게 책임을 지라며 억지를 부렸지. 이러한 일본의 행동은 처음부터 철저한 계획에 의한 거였어. 마치 20년 전 미국이 함포 사격으로 자신들을 위협해서 조약을 맺었던 것처럼 말이야.

일본은 여러 척의 배를 이끌고 와 조선을 위협하며 무역 관계를 맺도록 강요했어. 조선의 지배층은 ‘일본과 조약을 맺을 것인가’를 두고 찬성과 반대로 팽팽히 의견이 맞섰어. 특히 최익현은 일본도 서양과 똑같은 오랑캐이므로 절대 개항을 해서는 안 된다며 강하게 항의했어. 그는 서양 문물로 조선의 유교 질서가 무너지고 농촌 살림살이가 어려워져 나라가 망할 것이라면서 크게 걱정했지. 그러나 조선 조정과 개화를 바라는 일부 신하들은 일본과 조약을 맺기로 결정했단다. 이미 과거에도 일본에게 항구를 열어 준 일이 있어서 걱정할 것 없다는 안일한 생각에서 말이야.

1876년 조선은 일본과 12개 조항으로 된 강화도 조약¹을 체결했어. 서양의 강대국들을 물리치며 개항에 반대하던 조선이 마침내 일본에 의해서 나라의 문을 열게 된 거야.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 조약을 맺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야. 그런데 문제는 조약의 내용이었어. 조약의 내용이 어느 한 쪽에게만 유리하게 되어 있으면 안 됨에도 강화도 조약은 일본에만 유리하도록 되어 있는 불평등한 조약이었지. 하지만 국제법과 세계의 흐름에 밝지 못했던 조선 조정과 지배층은 조약을 체결하면서도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 철저히 서양식으로 무장한 일본과 개항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조약을 맺게 된 조선. 과연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엔 무슨 일이 생겼을까?

오늘의 퀴즈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로 외국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자주적인 근대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27일자에>

①박규수  ②박문수  ③박영효  ④박제가

※지난 퀴즈 정답 : ②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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