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08 16:56:20
1762년 6월 16일 경기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현재 남양주 조안명 능내리)에서 진주 목사를 지낸 정재원(1730~1792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해 3세 때 천자문을 익히고 6세 때 한시를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1789년엔 27세의 나이로 과거에 합격, 벼슬길에 올라 정조(조선 제22대 왕·1752~1800년)의 신임을 독차지했다. 1792년엔 정조를 도와 수원 화성을 설계했다. 이후 승승장구하던 그는 1800년 갑작스런 정조의 죽음 이후 정치 싸움에 휘말려 1801년부터 무려 18년에 걸쳐 전남 강진 등에서 유배(流配·죄인을 먼 섬 등에 떨어져 살게 하는 벌) 생활을 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1817년) ‘흠흠신서’(1822년) 등의 대표작이 대부분 이 시기에 완성됐다. 1818년에야 유배 생활을 끝낸 그는 183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에 머물며 마지막까지 학문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