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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샘이 들려주는 한국사이야기] 망나니 행세로 세도 가문 안심시키고, 깍듯하게 조대비 모시고···"야망 위한 내 작전 어때?"

2012/01/01 16:14:37

장남 두고 ‘열두 살 차남’ 왕으로 앉히다

19세기 중엽, 후기에 접어든 조선의 사정은 여러모로 좋지 않았어. 세도 정치<소년조선일보 2011년 12월 19일자 3면 참조>로 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관리들은 함부로 부정부패를 일삼았지. 세금제도 역시 문란하기 짝이 없어 농민들은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난리를 일으켰단다. 1863년, 철종(제25대 왕·1831~1863년)이 죽자, 이하응(흥선 대원군의 원래 이름)의 둘째 아들 재황⁴(본명은 이명복)이 열두 살 나이로 왕이 됐어. 그가 바로 고종이지.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 배경엔 흥선군의 치밀한 작전이 있었다고 해. 철종에겐 왕위를 이을 만한 아들이나 형제가 없었어. 이처럼 왕이 아들이나 친형제 없이 죽었을 경우엔 왕실의 친척 중 한 사람을 뽑아 왕위를 잇게 하던 풍습이 있었거든. 철종의 처지를 잘 알고 있던 흥선군은 당시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이었던 헌종(제24대 왕·1827~1849년)의 어머니 신정왕후(조대비·1808~1890년)에게 자신의 둘째 아들이 왕위를 잇게 해달라고 편지를 썼어. 실제로 영조(제21대 왕·1694∼1776년)의 후손이었던 재황은 왕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췄단다.

당시 세도 가문이었던 안동 김씨 일가의 횡포로 종종 서러움을 당했던 신정왕후는 흥선군의 제안을 받아들였어. 그리고 재황을 자신의 양자로 삼아 왕위를 잇게 했지. 그런데 여기서 잠깐, 흥선군은 왜 큰아들이 아닌 둘째에게 왕위를 잇게 했을까? 사실 그의 결정엔 ‘나라를 내 손으로 다스려보고 싶다’는 계획이 숨어 있었단다.

당시 흥선군의 큰아들은 19세로 왕위에 오를 경우 직접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어. 하지만 아직 열두 살밖에 안 되는 둘째가 직접 통치에 나서긴 어려웠지. 나이 어린 왕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 혹은 아버지가 대신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었거든. 이처럼 어린 국왕을 대신한 다른 누군가가 나라를 다스리는 형태를 어려운 말로 ‘섭정(攝政)’이라고 해. 흥선군은 ‘세도 가문을 몰아내고 떨어진 왕실의 위엄을 일으키려면 내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첫째가 아닌 둘째에게 왕 자리를 주기로 결심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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