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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별처럼 가슴 속에 많은 '꿈' 담아두렴!

2011/12/16 09:43:11

-동시집이 나온 걸 보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난 동시인이 아니에요. 성인들을 위한 시를 쓰지요. 시인의 마음은 어린이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예전엔 아이들을 위한 시를 쓴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외동딸 차령이가 태어나면서 달라졌어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때 나도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났고, 아이가 자라는 걸 보며 나도 함께 자랐지요. 세상의 말을 배우는 아이와 함께 내 언어도 새로 시작되는 느낌이었어요. 이상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답니다. 동시가 저절로 써졌어요. 그렇게 100여 편을 썼어요. 동시인이 아니라 주저했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걸 세상에 내놓게 됐어요. 동시집엔 이 중 30여 편이 담겼어요.”

-우리말 작품과 함께 영어 번역본도 실려 있는데요.

“오랫동안 내 시를 번역해준 안선재 단국대 석좌교수와 아내(이상화 중앙대 영문과 교수)가 번역을 맡아줬어요. 아내의 참여로 번역이 더 잘되지 않았나 싶어요.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함께 봐 왔으니 아무래도 느낌을 더 잘 살렸겠지요.”

-시와 동시, 많이 다르지 않았나요?

“동시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세상의 모든 동시인들에게 새삼스레 두려움을 느꼈어요. ‘내가 함부로 발을 들여선 안 되겠구나’ 하는 조심스러움도 생겨요. 그런데요, 한번 쓰니까 또 쓰고 싶은 꿈이 생겨요. 이 가슴 속에서요. 그 꿈이 언제 바깥으로 뛰쳐나올지 모르겠어요.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 언제일지 몰라도 세상 하늘 아래 나와 함께 숨 쉬고 있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바치고 싶어요.”

-동시 속에 추억이 많이 녹아있을 것 같아요.

“모든 시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꾸며댄 건 하나도 없죠. 차령이가 성장하며 겪은 일, 했던 말들을 그대로 옮겼어요. 예를 들어 ‘사진’이란 동시는 1980년대 후반의 어느 눈 오는 겨울날 차령이가 학교 갔다 와서 들려준 얘기예요. 학교 선생님이 ‘사진 찍자’면서 눈 쌓인 운동장에 아이들을 잠시 눕게 했대요. 하얀 눈밭에 아이들의 자국을 찍어놓고 그걸 사진이라고 부른 거죠. 그 얘길 듣고 ‘그것참 멋지구나!’ 했어요.”

-어린 시절 얘기 좀 들려주세요.

“우리 땐 인형도, 과자나 사탕도 없었어요. 그림책이나 동화책도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했지요). 물질적으론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빈곤했어요. 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축복이 있었어요. 별이 있었고 바람이 있었고 흙이 있었어요. 들엔 풀과 짐승, 벌레가 있었어요. 깨끗한 공기도 있었지요. 또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어요.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웠지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겐 그런 게 없어요. 꽉꽉 막혀 있잖아요. 보는 거라곤 컴퓨터, 멀리 봐도 건너편 아파트죠.”

-아이들에게 동시를 읽혀야 하나요?

“어린이들에게 시를 읽으라고 유혹하지 마세요. 어린이는 자기 스스로 이미 ‘동시’예요. 안 읽을 땐 놔두세요. ‘이건 좋으니까 읽어라’ 억지로 눈앞에 대주고 강요하는 것, 그건 아니에요. 그냥 두면 언젠가 스스로 시를 찾게 되는 순간이 올 거예요. 동시가 필요한 건 오히려 어른들이에요. 동시를 읽으며 자신의 순수했던 과거, 어린 시절을 짚어볼 필요가 있어요. 자신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를요.”

-어린이들이 삶의 지혜로 삼을 만한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마음속에 담긴 꿈의 양(量)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사람은 꿈을 먹으며 자라거든요. 하나씩 먹다가 나중에 꿈이 다 없어지면 슬프니까(웃음) 미리 꿈을 많이 채워두길 바래요. 깜깜한 밤하늘에 뜬 찬란한 별처럼 무수히 많은 꿈을 가슴에 품으세요. 그 꿈들이 자라면서 살이 되고, 뼈가 되고, 머리카락이 되거든요. 한 가지 더. 많이 걸으세요. 걸으면서 해가 뜨고 지는 것, 별과 달, 바다와 파도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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