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09 17:34:41
Q. 인권이란 말, 좀 어려운데…
A.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권리
사회자: 우선 인권의 개념부터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김인숙: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권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권을 지키는 것에 대해 “내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정대호: 여기 오기 전, 인터넷으로 아동인권선언문을 찾아봤어요. 어떤 곳엔 10개조로, 다른 곳엔 54개조로 각각 나오던데요.
김인숙: 결론부터 말하면 54개조가 맞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두루 쓰이는 어린이 인권 조항은 지난 1989년 체결된 국제연합(UN) 아동권리협약(이하 ‘협약’)<아래 참조>입니다. 협약의 시초는 1923년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국제어린이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을 만든 에글란틴 젭(1876~1928년) 여사는 당시 어린이들이 전쟁에 무참히 희생되는 걸 보며 ‘세계아동권리선언문’을 만들었어요. UN의 전신인 국제연맹은 젭 여사가 쓴 선언문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듬해인 1924년 ‘제네바 아동권리선언문’을 발표했죠. 이때만 해도 선언문은 5개 조항에 불과했어요. 1959년 UN은 제네바 선언문에 5개 조항을 더해 다시 선언문을 선포했죠. 그리고 1989년, UN은 만장일치로 11월 20일 아동권리협약을 통과시킵니다. 이때 만들어진 조항이 54개죠.
최리아: 우리나라 어린이 인권의 역사도 궁금해요.
김인숙: 세계적 흐름부터 짚어볼게요. 고대 원시시대엔 어린이를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534년 만들어진 유스티아누스 법전은 가난한 가정의 부모에게 ‘자녀 판매 권리’를 법적으로 허용하기도 했죠. 하지만 생명 중시 사상에 바탕을 둔 기독교가 서구사회에 뿌리내리면서 어린이의 존재에 대한 생각이 점차 달라졌어요. 1923년 젭 여사가 선언문을 발표했을 때, 우리나라에선 소파 방정환(1899~1931년)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만들며 어린이 인권을 위한 공약 3장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 우리 정부가 UN아동권리협약 참여국이 되면서 세계 인권의 흐름에 동참하게 됐죠.
Q. 인권 침해 범위, 어디까지?
A. 문제아 치료 TV 프로도 해당
정대호: 그런데 왜 어린이만을 위한 인권협약이 필요한 건가요?
김인숙: 질문이 잘못됐어요. 인권은 ‘원래는 없었는데 갑자기 필요해진 것’이 아니에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죠. ‘필요’보단 ‘발견’이란 말이 더 맞겠네요. 그래도 굳이 설명을 하자면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인권을 침해당하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더구나 어린이는 어른에 비해 자신의 권리를 잘 알지 못해요. 화가 나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요. 어린이 인권 침해의 대표적 예는 일명 ‘교육적 체벌’이에요.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이 정당화되잖아요. 혹시 집이나 학교에서 체벌을 받은 경험이 있나요?
정대호: 네, 맞는 게 두려워 복도에서 뛰고 싶은 걸 참은 적이 많아요.(웃음)
김인숙: 대부분의 어린이는 안정된 환경에서 가르침을 받을 때 학습 능률이 오릅니다. 체벌은 아이를 불안하게 할 뿐, 장기적으론 효과가 없어요. 물론 선생님들도 대화가 최선의 방법이란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교사 한 명에게 배정된 학생 수가 많았기 때문에 효과가 금세 나타나는 체벌을 선택해 온 거죠.
최리아: 어린이심리 전문가가 잘못된 어린이의 행동을 고쳐주는 내용의 TV 프로그램을 봤어요. 그런 방송에 출연한 어린이에겐 아무래도 ‘문제아’란 낙인이 찍힐 것 같아요. TV 출연 결정을 어린이 본인이 내린 건 아닐 텐데…. 이것도 인권침해 아닌가요?
김인숙: 좋은 지적이에요. 이 밖에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역시 ‘간접적 인권침해’ 요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처럼 ‘좋은 대학 가기’가 목표인 곳에선 모든 어린이들이 학교 공부만 해야 해요. 노래나 춤을 배우고 싶은 친구들도 있을 텐데 말이죠.
최리아: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우리도 인권선언문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김인숙: 우선 본인이 직접 경험하거나 남에게 들었던 인권침해 사례부터 적어보세요. 그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보세요. 예를 들어 여러분 주변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차별받는 광경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다면 ‘모든 어린이는 인종에 관계없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란 조항을 만들 수 있겠죠. 그럼 우리 함께 선언문을 만들어볼까요?
UN 아동권리협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