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0 16:54:47
얼마 전 새로 나온 5만원권 지폐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고 있니? 맞아, 신사임당이야. 그동안 지폐의 주인공들은 모두 남자였어. 1000원엔 퇴계 이황(1501~1570년), 5000원엔 율곡 이이(1536~1584년), 1만원엔 세종대왕(1397~1450). 지폐는 아니지만 100원짜리 동전에 그려진 이순신 장군(1554~1611년)도 있지. 여성 중에선 신사임당이 처음으로 뽑혔어.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어서라고 해. 하지만 신사임당이 존경 받는 건 단지 이이처럼 뛰어난 학자의 어머니이기 때문만은 아니야. 그는 시와 글씨, 그림에 두루 능했어. ‘초충도(草蟲圖·풀과 벌레를 다룬 그림)’ 등을 남긴 천재 화가이기도 했지. 그럼 신사임당과 가상 인터뷰 한 번 해볼까?
아이: 안녕하세요? 전 조선시대를 탐험하러 온 꼬마 역사학자 ‘조기자’라고 합니다.
신사임당: 아, 그래요? 반가워요, 조기자. 무엇이 궁금한가요?
아이: 먼저 5만원권 지폐의 주인공이 되신 소감부터 말씀해주세요.
신사임당: 정말 기쁘죠. 그동안 우리나라 화폐 주인공은 죄다 남자였잖아요. 그런데 저와 같은 여성이, 그것도 지폐 중 최고액인 5만원권에 등장하다니. 이 기쁨을 모든 여성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아이: 조선시대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하는 등 남녀 차별이 심했다고 들었어요.
신사임당: 사실 임진왜란(1592~1598년) 이전까지만 해도 여자란 이유만으로 크게 차별 받진 않았어요. 제 경우만 해도 결혼 후 친정(시집간 여자의 본집)인 강릉 오죽헌에 살았고 오히려 남편이 처가살이를 했죠. 거기서 이이도 태어났고요. 훗날 재산도 아들딸에게 똑같이 나눠줬답니다.
아이: 그럼 언제부터 남녀 차별이 시작된 건가요?
신사임당: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나라에서 ‘유교 질서를 바로잡는다’며 모든 문화를 남성 중심으로 바꾸기 시작했어요. 재산도 아들에게 주로 물려줬고 여자는 족보에 이름조차 못 올리게 했죠. 혼인 풍습도 바뀌어 결혼식을 치른 후 여자들이 시집(시부모가 사는 남편의 집)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어요. 따지고 보면 ‘시집살이’란 말의 역사도 그리 오래된 게 아니에요.
아이: 그럼 조선 후기에 여자들을 가장 힘들게 한 건 무엇이었나요?
신사임당: 아무래도 사회 활동에 거의 참여할 수 없고 집안일에만 전념해야 했던 거겠죠. 여자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오로지 집안을 지키고 자녀 교육에만 힘쓰라고 강요 받았거든요. 재혼은 꿈도 못 꿀 일이었어요. 남편이 죽으면 평생 혼자 살아야 했죠. 그러면 나라에서 ‘열녀(烈女·지조를 굳게 지키는 여자)문’을 세워주기도 했답니다. 양반집에선 그걸 가문의 영광으로 여겼다고 해요.
아이: 그렇군요. 그럼 저 같은 꼬마 역사학자들을 위해 조선을 빛낸 여성을 몇 분 소개해주세요.
신사임당: 그러죠. 먼저 저처럼 시와 글짓기 등 문학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 허난설헌이 있어요. 홍길동전을 쓴 허균(1569~1618년)의 누나이기도 하답니다. 다음은 윤지당 임씨(1721~1793년)예요. 남성 위주의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몸으로 학문을 익혀 성리학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이죠. 윤지당 임씨보다 50년 후에 태어난 정일당 강씨(1772~1832년)는 여성 선비로서 10여 권에 이르는 책을 남기기도 했어요. 사주당 이씨(1739~1821년)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그는 1800년 임신한 여성에게 태교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태교신기’란 책을 썼답니다. 특히 그는 당시에 이미 ‘태교를 위해 남편을 비롯, 모든 가족이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아, ‘제주도를 구한 여성 CEO(최고경영자)’ 김만덕(1739~1812년)도 있군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장사를 하며 큰 부자가 된 그는 흉년으로 굶주린 제주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했어요. 당시 정조(조선 제22대 왕·1752~1800년)는 그에게 여성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벼슬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조선 말기로 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 지도자’ 윤희순(1860~1935년)이 등장합니다. 그는 “나라를 구하는 덴 남녀 구별이 있을 수 없다”며 여성의 의병 참여을 권하는 한편, ‘안사람 의병가’ 등 8편의 의병가를 만들어 일본에 맞서 싸웠어요.
아이: 정말 감사합니다. 신사임당 선생님 덕분에 남녀 차별이 심했던 조선 후기에도 자신의 숨은 재능을 펼친 훌륭한 여성이 많았단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신사임당: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조기자를 포함, 꼬마 역사학자들을 위해 제가 퀴즈 하나 내볼까요? 조선 후기 여성의 삶을 표현한 이 말은 ‘어려선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선 남편을 따르며, 늙어선 아들을 따른다’는 뜻을 갖고 있어요. 여자의 세 가지 도리를 가리키는 이 말은 무엇일까요? ①삼강오륜 ②삼사일언 ③삼삼오오 ④삼종지도 정답은 다음 호에 알려줄게요.
※지난 호 퀴즈 정답: ②신윤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