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1 17:54:02
◆“고전의 자질은 ‘시간’이 검증했죠”
“고전이 왜 ‘제목만 아는 책’이냐고요? 굳이 찾아 읽지 않아도 제목 정돈 알 수 있을 만큼 유명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고전 독서법’을 알려준다는 책 중 상당수는 일반 학부모가 잘 모르는 책들을 권장 도서로 잔뜩 올려놓았어요. 그런 책은 과감히 무시하세요. 정상적 교육을 받은 학부모가 제목조차 모르는 책은 ‘진짜 고전’이 아닌, ‘억지로 끼워 맞춘 고전’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송재환 선생님은 지난 학기부터 자신의 반 아이들에게 한 달에 한 권씩(방학 중엔 두 권씩) 900페이지 이상 되는 두꺼운 고전을 읽혀왔다. 다른 동산초등 학생들도 1년간 이 학교 선생님들이 선정한 16~17권의 고전을 읽어야 한다. 권장도서 목록엔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 글·시공주니어), ‘키다리 아저씨’(진 웹스터 글·인디고), ‘소나기’(황순원 글·맑은소리) 같은 책들이 포함돼 있다. 송 선생님은 권장도서의 선정 기준을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책”이라고 말했다.
“30년은 한 세대가 순환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에요. 그보다 더 오래 사랑받는 책은 한 세대가 지나도 읽을 만한 책이란 얘기죠. 시간이야말로 가장 믿을만한 심사위원입니다. 한 세대에 걸쳐 살아남은 책은 100년, 200년이 지나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거든요. 그러니 학부모들이 읽었던 책 중 아직 읽히는 책이 있다면 고전의 범주에 넣어보세요. 고전이 훨씬 쉽게 느껴질 거예요.”
고전 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학생과 학부모의 우려였다. 요즘 아이들이야 다독상을 준다고 하면 한 학기에 300권이나 되는 책을 읽어내지만 이들에게도 고전은 ‘어렵고 딱딱한 책’이기 때문. 송 선생님은 “고전에 도전할 땐 바로 그 걱정과 두려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힐 때 꼭 말해줍니다. ‘이 책들은 너희가 아는 유명 학자들이 항상 읽어 왔다. 비록 읽는 과정은 좀 힘들겠지만 다 읽은 후엔 분명 다른 아이들과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정말 그 책을 다 읽어냅니다. 그리고 읽는 데 들인 노력보다 훨씬 큰 자부심을 얻게 되죠.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고전을 척척 읽어나간답니다.”
◆두께에 기죽지 말고 ‘원전’ 도전을
고전은 한 권당 분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초등생이 읽어내려면 주변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정에서 자녀를 대상으로 ‘고전 읽기 프로젝트’를 실시하려면 엄마도 함께 고전 읽기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하루에 딱 20쪽만 아이와 함께 고전을 읽어보세요. 사실 저도 아이들과 고전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엔 권장도서들을 다 읽지 않은 상태였어요. 대신 아이들이 책을 읽는 20분 동안 저도 함께 고전을 읽었답니다.”
고전 독후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질문하기’다. 단, 이때 질문자는 부모님과 선생님, 학생 등 누구나 될 수 있다. “초등 과정에서 가장 중시되는 세 가지 읽기 능력이 ‘상상하며 읽기’, ‘질문하며 읽기’, ‘배경지식 활용해 읽기’예요. 이 중 질문하며 읽기는 특히 고전을 읽을 때 기본이 됩니다. 예를 들어 ‘논어(論語·공자와 그의 제자 간 대화를 정리한 유교 경전)’ 중 ‘군자는 고상한 데로 나아가고 소인은 세속적인 데로 나아간다’란 문장이 있어요. 논어를 읽을 땐 이런 질문을 던져보세요. ‘너희가 가는 곳 중 고상한 데는 어디니?’ 아이들은 의외로 ‘고상한 데는 도서관, 세속적인 데는 PC방’이라고 정확하게 대답한답니다. 물론 아이가 엄마나 선생님에게 질문하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죠.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좋은 질문’<박스 참조>을 던지면 아이에게도 자연스레 좋은 질문거리를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되거든요.”
독후 활동은 고전이 속한 장르에 따라 그 성격이 조금씩 달라진다. 논어처럼 짧고 외우기 좋은 책을 읽을 땐 ‘한 구절 공책’을 만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을 기록해두면 좋다. ‘오만과 편견’(영국 작가 J.오스틴의 1813년 작품) 같은 소설은 연극으로 만들어 대사를 읊고 연기해보면 주인공의 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백범일지’(백범 김구<1876~1949년> 선생이 1847년 펴낸 자서전) 등 역사적 인물을 다룬 고전은 일본강점기 등 관련 역사적 배경을 찾아보며 읽으면 효과적이다. 하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은 원전(原典·기준이 되는 본디 고전)을 모두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편집자가 소설을 번역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보면 무척 놀랍습니다. 정말 많이 바뀌거든요. 특히 어린이용으로 나온 소설들은 원작자가 쓴 책과는 아예 다른 책이라고 봐도 될 정도예요. 하지만 편집자보단 원작자에게 배울 점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 여러분도 두껍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원전 읽기에 도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