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2 09:59:00
이후 몽골이 또다시 침입해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자, 1236년(고종 23년)대장경판을 만들기 시작해 1251년(고종38년) 완성했다. 이게 지금껏 전해지는 팔만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의 원래 이름은 두 번째 만들어졌다는 의미가 담긴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팔만대장경이란 이름은 재조대장경이 약 8만 개의 경판으로 이뤄져 있단 뜻에서 붙여진 별칭이다. 성안 스님은 “팔만대장경은 기존에 나와 있던 다른 나라 대장경 속 틀린 글자나 잘못된 설명을 바로잡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기록물” 이라며“1000여 명이 투입돼 글씨를 썼는데도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정교하고 완벽해 작품성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팔만대장경은 당시 고려의 임시 수도였던 강화도에 설치된 ‘대장도감’의 주관으로 만들어졌다. 남해에 있던 ‘분사대장도감’ 도 경판 제작을 맡았다. 팔만대장경에 쓰인 나무는 산벚나무, 돌배나무 등 10여 종(種). 이 나무들을 △바다에 1~2년 정도 담근 후 건져내 소금물에 삶고 △1년간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말린 다음 △다듬어진 경판에 대장경 원고가 쓰여진 종이를 붙여 새기는 과정을 거쳤다. 완성 후엔 장기간 보관을 위해 옻칠과 마구리 작업을 했다. 마구리란 경판끼리 서로 부딪히는 것을 막고 보관할 때 바람이 잘 통하도록 경판 양쪽 끝에 두꺼운 각목을 붙인 후 네 귀퉁이를 구리판으로 장식한 형태를 일컫는다.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이 수백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뒤틀림 없이 보존될 수 있었던‘1등 공신’이다. 벽면의 아래·위와 건물 앞·뒷면의 살창 크기가 각각 다르게 지어진 게 특징. 이 같은 설계는 공기 순환을 도울 뿐 아니라 적정 온도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다(그래픽 ①). 또한 땅을 깊이 파서 만든 장경판전 바닥엔 위에서부터 차례로 소금, 숯, 모래·찰흙·횟가루 등이 뿌려졌다. 그 덕분에 비가 많이 왔을 땐 습기를 빨아들이고 가뭄이 들 땐 머금고 있던 습기를 내보내는 등 자동 습도 조절 기능을 갖추게 됐다(그래픽 ②).성안 스님은 “세계기록유산(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장경판전)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類例·같거나 비슷한 예)가 없다”고 말했다.
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
①대장경 천년관
‘2011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의 주요 전시관은 '대장경 천년관' '지식문명관' 등 다섯 개다. 주전시관인 대장경 천년관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실물 목판 팔만대장경 2점을 만나볼 수 있다. 팔만대장경판에 새겨진 활자들이 살아 있는 듯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공간, 3D 영상과 홀로 큐브(가상 영상인 홀로그램을 손으로 만져 작동시키는 기술)등이 활용된 한글대장경 검색공간 등도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