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9 16:39:16
채원이가 처음 소년조선일보를 읽기 시작한 건 유치원 때였다. “한글이 서툰 편이었어요. 피아니스트 어머니를 따라 미국을 자주 오가는 바람에 한글을 제대로 익힐 기회가 별로 없었거든요. 소년조선일보는 당시 제 유일한 ‘한글 선생님’이었어요. 4컷 만화 ‘뚱딴지’와 기사 제목, 사진 등에서부터 시작해 나중엔 줄글 기사 읽기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됐죠. ‘소년조선일보와 함께 자란 어린이’라고나 할까요? (웃음) 그 덕분에 자연스레 명예기자의 꿈도 키울 수 있었어요.”
하지만 명예기자로 뽑힌 지 얼마 안 됐을 때, 채원이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두어 달 만에 드디어 실린 기사가 당초 보냈던 것과 전혀 달랐던 것. “기사 아래 적힌 제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였어요. 당시만 해도 기사 쓰는 방법이나 요령을 아예 몰랐거든요. 그때부터 신문에 실린 다른 기사를 보며 꾸준히 기사 쓰는 걸 연습했어요. 그 덕분에 조금씩 ‘덜 고쳐진 기사’를 실을 수 있게 됐죠.”
채원이는 명예기자 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선물 받았다. 처음엔 교내 행사에서 친구들을 인터뷰하는 것조차 쑥스러워 망설이곤 했지만 이젠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질문을 건넬 정도로 씩씩해졌다. 기사 쓸 때 같은 단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사전 찾는 습관을 들인 후 어휘력도 부쩍 늘었다.
채원이는 “명예기자 활동은 ‘공짜로 논술 교정을 받는 기회’”라고 귀띔했다. “기사를 보내면 기자 언니·오빠들이 신문에 맞게 고친 후 실어주시잖아요. 처음 쓴 기사와 바뀐 기사를 비교하다 보면 자연스레 글쓰기 실력이 키워진답니다. 실제로 전 명예기자 활동을 시작한 이후 교내 글짓기상은 모두 휩쓸었어요.”
3년간 소년조선일보 명예기자로 열심히 뛴 덕분에 채원이는 교내외에 제법 이름을 알렸다. 올해 부임한 담임 선생님은 학기 초 채원이를 불러 “신문에서 이름 자주 봤다”며 칭찬해주셨다. 같은 반 친구 고재희 양(5년)은 명예기자 응모 절차부터 기사 쓰는 요령까지 채원이에게 일일이 조언을 구한다. 채원이는 “주변 친구나 아는 동생이 ‘나도 신문에 나오게 인터뷰 좀 해 달라’고 할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채원이가 친구들에게 귀띔한 ‘1등 명예기자상 수상 비결’은 꾸준함과 성실함. “글이 자주 실리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를 보내세요. 신문에 실린 다른 기사를 참고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답니다. 또 하나, 기사 제출에 마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되도록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담도록 노력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