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8 16:16:23
◆신하에게 배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세종
“댕~ 댕~ 댕.” 종루(보신각)에서 새벽 4시를 알리는 종이 서른 세 번 울렸어. 조선시대 사람들은 그 소리에 맞춰 도성의 문이 열리고 나서야 비로소 거리를 다닐 수 있었지. 지금과 달리 그땐 ‘통행금지’란 게 있었거든.
세종은 강녕전(康寧殿)에서, 왕비는 교태전(交泰殿)에서 각각 눈을 떴어.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각이지만 벌써 일과가 시작된 거야. 세종은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식사를 했는데 죽과 같은 간단한 음식이 주요 메뉴였대. 5시 30분엔 경복궁을 대표하는 근정전에서 조회가 있을 예정이야. 조회는 신하들이 왕께 인사 드리는 행사인데 닷새에 한 번씩 열렸지.
조회가 없는 날은 한 시간가량 아침 공부를 한 후 식사를 했어. 그런 후 왕실 어른들을 찾아뵙고 문안 인사를 드렸지. 문안이 끝나면 보통 오전 9시 정도가 돼. 그때부턴 사정전(思政殿)에서 윤대(輪對)가 치러졌단다. 사정전은 왕이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던 곳, 윤대는 관리들이 직접 궁궐에 참석해 왕의 질문에 대답하는 일을 각각 말해. 왕은 윤대를 통해 관리들의 어려움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어.
윤대가 끝난 정오 무렵엔 점심 식사를 하고 간단한 휴식을 가졌어. 왕들도 시간이 나면 사냥이나 활쏘기, 격구(擊毬·말을 타거나 걸으며 공채로 공을 치는 운동) 등의 놀이를 즐기거나 책 읽기, 그림 그리기, 글쓰기 등을 했지. 세종은 여가 시간에 주로 책을 읽었다고 해.
이제 오후 일과를 살펴볼까? 오후 역시 쉴 틈 없이 흘러갔단다. 첫 번째 일정은 바로 경연(經筵)이야. 경연이란 왕이 학문이 높고 경험이 많은 신하들과 함께 공부하던 일을 말해. 세종은 거의 매일 경연에 참석해 학문을 쌓았어. 또한 경연을 통해 신하들과 머릴 맞대고 중요한 나랏일을 해결해갔지. 조선의 모든 왕이 경연에 참여했던 건 아니란다. 태종(제3대·1367~1422년)과 세조(제7대·1417~1468년)는 “왕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경연을 멀리했어. 왕이 신하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사실이 못마땅했던 모양이야. 심지어 연산군(제10대·1476~1506년)은 경연을 없애기도 했어. 오후 1시에 시작된 경연은 평균 두 시간씩 진행됐어.
다음은 상소문(上疏文)을 읽어볼 차례야. 상소는 백성이 임금에게 올리던 편지의 일종이라고 보면 돼. 상소문을 잘 읽고 각각의 내용에 알맞은 지시를 내리는 것도 왕의 주요 업무였지. 어느덧 오후 5시, 세종은 밤새 궁궐을 지켜줄 군사와 신하의 명단을 확인한 후 저녁 경연을 시작했어. 오후 7시쯤 저녁 식사를 마친 세종은 오전과 마찬가지로 왕실 어른들께 저녁 문안을 드린 후 야간 공부를 시작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