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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샘이 들려주는 한국사이야기] "경복궁 앞 일장기 내걸린 그날, 한없이 울었다오"

2011/08/28 16:54:16

◆민경환의 선택, 이완용의 선택

드디어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 5000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치욕스러운 한·일병합조약이 발표됐어. 대한제국과 일본을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의 이 조약이 맺어진 이후 경복궁 근정전엔 일장기가 내걸렸지. 사실 이완용이 순종을 대신해 조약문에 서명한 건 이보다 1주일 앞선 8월 22일이었단다. 하지만 거센 반대 운동을 예상한 일본 측이 독립운동 단체들을 줄줄이 해체시킨 후 조약 체결(締結·계약 따위를 공식적으로 맺음) 사실을 발표한 거야.

한·일병합조약 제1조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완전하고도 영원히 통치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단순히 두 나라가 합치는 게 아니라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로 점령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낸 거야. 이로써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어. 경술년(1910년)에 있었던 이 치욕스러운 사건을 ‘경술국치’라고 한단다. 일부에선 경술국치 대신 ‘한일합방’이란 말을 써. 하지만 그건 우리나라의 권리를 빼앗아간 일본의 행동을 인정하는 말이니까 사용해선 안 돼. 그렇게 시작된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1945년까지 계속됐단다.

여기서 잠깐, 나라가 위기에 놓였을 때 국민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여기 대조적 예를 보여주는 두 사람이 있어. 이완용, 그리고 민영환(1861~1905년)이야. 공교롭게도 둘은 고종 황제를 가까이에서 모시던 신하였어. 민영환은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지 못한 책임에 대해 나라와 백성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단다. 하지만 이완용은 을사늑약을 맺게 해준 대가로 일본 백작의 지위와 넓은 땅을 얻어 잘 먹고 잘 살았지.

오늘날 역사는 둘을 어떻게 기억할까? 서울 지명 중 ‘충정로’는 의로운 죽음을 택했던 민영환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야. 하지만 이완용은 친일파이자, 나라 팔아먹은 도둑이란 이름으로 계속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단다. 꼬마 역사학자들, 너희가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민영환처럼 살았겠니, 이완용처럼 살았겠니? 곰곰이 되새겨보길 바라.

◆부끄러운 과거, 잊어선 안 돼

8월 29일, 바로 오늘이야. 불과 100여 년 전 오늘, ‘힘 없다’는 이유로 우리나라가 일본에 당한 치욕을 잊지 말자꾸나. 부끄럽고 창피한 과거도 엄연한 우리나라 역사야. 숨기거나 가리기에 급급하기보다 선명하고 또렷하게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며 부끄러운 과거를 반복하지 않도록 단단히 마음먹자.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건 선생님, 그리고 꼬마 학자들의 몫이겠지?

그럼 여기서 오늘의 퀴즈. 1909년, 대한제국과 을사늑약을 맺은 장본인인 일본 이토 히로부미(1841~1909년)를 만주 하얼빈에서 총으로 쏴 죽인 사람은 누굴까? 힌트. 어렸을 적 이름은 ‘응칠’이였고 의병장 출신이야. 단지동맹이란 단체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펼치신 분이기도 하지. ①안창호  ②안중근  ③이봉창  ④윤봉길 정답은 다음 시간에 알려줄게.

※지난 호 퀴즈 정답: ③셋째

☞윤준기 선생님은···

·중국 천진한국국제학교 근무
·2007 개정 국정 사회 5학년 교과서 집필
·2007 경기도 교육청 으뜸교사상 수상
·한국역사학회 회원
·한국교총 우리역사연구회 회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장학자료 집필
·경기도교육청 장학자료 집필
·한국교총 주관 '독도의 날' 경기도 대표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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