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5 16:34:32
“죄송합니다. 지금은 차를 돌려주세요.”(이창용 루지 국가대표 코치·27세)
지난 19일 알펜시아 리조트 내 순환도로. 차가 씽씽 달리는 가운데 루지 국가대표팀의 주행 훈련이 한창이었다. 선수들은 바퀴가 달린 조그만 썰매에 온몸을 의지한 채 아찔한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이창용 코치는 비탈길 아래 서 있었다. 이 코치는 선수들의 자세를 교정하다가도 어디선가 엔진 소리가 들려오면 차 쪽으로 달려가 운전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박진용 선수(전북 무주 설청고 3년)는 속도가 붙은 썰매를 세우다 지나가는 차에 부딪힐 뻔하기도 했다. 전용 훈련장 하나 없이 연습해야 하는 루지 국가대표팀의 현실이다.
◆전용경기장도, 코치도, 감독도 없이 시작
우리나라 루지의 역사는 불과 10여 년. 지난 1998년 나가노(일본) 동계올림픽에 강광배(38세)·이용(33세)·이기로(35세) 선수가 출전한 게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루지에 대한 국민들의 호기심은 곧 사그라들었다. 선수들도 모두 은퇴를 선언한 1999년, 다시 루지를 시작한 건 이창용 코치였다. 감독도, 코치도 없던 상황에서 그는 당시 무주 훈련장 전담 코치였던 박순식 전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에게 지도를 받았다. 2000년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컵에 출전해 동메달을 땄지만 세계 대회에선 번번이 하위권에 머물러야 했다. 낙담한 그는 꿈을 접고 군에 입대했다.
지난해 그는 루지 국가대표 트레이너직을 제안받았다. 그리고 그해에 아시안월드컵 금메달리스트 최은주(21세)·박진용(19세) 선수를 만났다. 처음 이들을 선발할 땐 경기장이 없어 썰매는 태워보지도 못했다. 체력 테스트가 선발 기준의 전부였다. 선수들은 경기장을 찾아 일본·라트비아 등을 전전했고 법정 국가대표 훈련일(140일)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엔 학업을 병행했다. 대구한의대 1학년을 휴학 중인 최은주 선수는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연습 8개월 만에 국제대회에서 일본·중국·인도·대만 등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고 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