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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위인전] "꿈 향한 쉼 없는 노력으로 편견 뛰어넘을 수 있었죠"

2011/07/17 16:27:04

난 전형적 농촌 가정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어요. 요즘 어린이들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내가 어릴 땐 초등생도 어엿한 ‘집안 일꾼’이었어요. 모 심기, 소 키우기, 산에서 땔감 해오기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죠. 하지만 농사일을 돕지 않을 땐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는 보통 어린이였답니다.

초등 6학년 때 ‘서울로 가서 성공해보자!’는 결심을 했어요. 당시만 해도 공부하기 위해, 돈 벌기 위해 서울로 떠나는 사람이 많았어요.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망아지는 <말의 고장인> 제주도에서 길러야 하고, 사람은 어릴 때부터 서울로 보내 공부를 시켜야 잘된다는 말)’는 속담이 유행했던 시절이죠. 부모님 몰래 한두 푼씩 모아둔 쌈짓돈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어요.

꿈에 그리던 서울에 도착했지만 서울은 초등생이 혼자 살아가기엔 벅찬 곳이었어요. 구두 닦기, 공장 허드렛일, 아이스크림 팔기 등 안해본 게 없었어요.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는 걸 그제야 절실히 깨달았죠.

◆금남(禁男)의 분야에 발을 들이다

스물두 살 때였어요.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아 앞이 까마득했던 시절이었죠. 우연히 서울 종로 거리를 지나다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YMCA 미용실’ 앞을 지나게 됐어요. 문득 생각했어요. ‘남자도 미용 일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작정 들어가 “미용 일을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죠. 당시만 해도 미용 일은 여성 전용 분야였어요. 하지만 다행히 그곳 원장님은 ‘해외에선 남자 헤어디자이너도 많다’는 걸 알고 계신 분이었고, 그 덕분에 허락을 받아 본격적으로 일을 배울 수 있었답니다.

‘나도 잘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기쁨을 느낀 것도 잠시, 주변 시선과 손님들의 인식은 절 힘들게 했어요. ‘여자가 하는 일’을 남자가 한다고 해서 툭하면 구경거리가 되곤 했죠. 어떤 손님은 “남자가 머리 손질하는 게 싫다”며 대놓고 날 피하기도 했어요. 그때 이후 담배를 끊고 콧수염을 길렀어요. 액세서리도 전부 떼어버렸죠. ‘미용은 여자만 할 수 있는 분야’란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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