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2 17:03:20
이다건 양 “책 속 감동 글로 표현하고 싶었죠”
해리포터 팬사이트에 자작소설 올려
“눈 부신 햇살이 내 방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 눈을 떴다. ‘꿈이었어. 어제도 호그와트에 가는 꿈을 꿨는데.’ 난 여전히 뜨거운 이마를 문지르며 간신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여긴…. 호그와트.”
위 글은 해리포터 팬사이트 ‘미스터 포터의 해리포터(이하 ‘미포’)’에 올라온 ‘해리의 사슴’이 쓴 소설의 일부다. ‘해리의 사슴’은 미포 내에서 이다건 양이 사용하는 닉네임(별명). 이 양은 지난해 12월부터 한 달에 서너 편씩 쉬지 않고 미포에 직접 쓴 소설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겨울이 유난히 추웠잖아요. 방학 때 우연히 책장에서 꺼내 든 해리포터를 읽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됐어요. 2주 만에 4개 시리즈, 그러니까 10권의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죠.”
책을 덮은 후 이 양은 소설의 감동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 우선 팬사이트를 뒤져 같은 주제로 얘기할 친구들부터 찾았다. 소설을 써서 올린 것도 그 즈음부터였다. 처음엔 해리포터와 관련 없는 단편부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둔 때였어요.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는데 문득 삼촌 때문에 갇혀 살았던 ‘해리’와 몇십 년간 영문도 모른 채 감금됐던 만화 겸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가 겹쳐 떠오르는 거예요. 그 두 캐릭터를 합쳐 열 살이 되도록 밖에 나가지 못하다가 크리스마스에 첫눈을 맞고 기뻐하는 주인공 ‘톰’을 만들었죠.” 그렇게 탄생한 첫 소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크리스마스’는 사이트 운영진이 정한 ‘이달의 소설’ 후보에 올랐다.
자신감을 얻은 이 양은 이내 해리포터 속 또 다른 주인공 ‘해리’와 ‘론’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이 부분은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한 걸 글로 옮겼어요. 같은 장면의 시점을 바꿔보기도 하고, 휙 지나가버려 아쉬웠던 부분은 더 자세히 묘사하는 등 원작을 조금씩 바꿔나갔죠.”
이 양이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건 3학년 때 들었던 글짓기 특별활동 수업 덕분이었다. 수업은 1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이 정해준 주제에 맞춰 글을 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수업을 들으며 문법과 맞춤법을 바로잡고 표현력을 길렀어요. 문체는 ‘담백하게’, 문장은 ‘짧게’가 제 글쓰기의 포인트죠. 다른 작가의 글도 좀 더 날카롭게 분석하며 읽는답니다. 작가들끼리 댓글로 주고받는 조언은 큰 힘이 돼요.”
이 양의 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 방송 작가, 소설가 등 글을 쓰는 직업이라면 뭐든 좋아요. 여러분도 책 ‘읽기’에만 만족하지 말고 ‘쓰기’에 도전해보세요!”
김용진 군 “제 지팡이엔 ‘장인정신’ 담겼어요”
해리포터 좋아하다 미술에까지 관심
‘열혈 해리포터 사랑’. 미술이라면 질색하던 김용진 군이 학교에서 ‘독후 그리기’ 상을 받고 만화를 그리게 된 사연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지난해 여름 영국 여행을 갔다가 실제 소설에 나오는 킹스크로스 역을 찾았어요.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한구석에 영화 속 한 장면처럼 9와 4분의 3 정거장에 카트가 꽂혀 있었죠. 물론 실제로 카트가 벽을 통과하지 못했지만요.”(웃음)
여행을 끝낸 김 군은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해리포터 영화 시리즈를 찾아봤다. 그 후로 김 군의 하루는 온통 해리포터로 시작해 해리포터로 끝났다. “영화를 오래 보고 있으니 눈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영화 음원을 딴 후 MP3 플레이어로 하루 종일 들었어요. 배경 음악만 들어도 그 음악이 몇 편의 어느 장면에서 나오는지 줄줄 외울 정도로요. 그랬더니 절로 영어 공부가 되더라고요. 원서도 구해 읽었어요. 모든 단어를 알진 못하지만 구절마다 영화 장면이 떠오르니 읽은 덴 전혀 문제가 없던걸요.”
‘보고 듣고 읽는’ 것만으론 모자랐다. 김 군은 실제로 해리포터처럼 마법을 부리고 주문도 외우고 싶었다. 급기야 집 주위 뒷산으로 올라갔다. 지팡이를 만들 재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지팡이를 만들려면 꽤 세심한 준비가 필요해요. 우선 단단하고 잘 부러지지 않는 나뭇가지를 구해야 해요. 그다음엔 나무를 물에 불려서 말랑하게 만들죠. 그런 후 조각칼로 모양을 내고 표면이 매끄럽도록 사포질을 해주면 끝이에요. 어렵진 않지만 나름대로 ‘장인정신’이 필요한 작업이랍니다.”(웃음)
김 군에겐 그렇게 만든 지팡이가 벌써 너덧 개나 된다. (자세히 보면 손잡이 모양이 약간씩 다르다. “실제 해리포터 작품에 등장하는 지팡이 모양이 다 다르기 때문”이란 게 김 군의 설명이다.) 김 군은 시간 날 때마다 이 지팡이로 동생과 함께 주문을 외며 논다.
김 군은 해리포터 덕에 그림에도 흥미를 붙였다. 지난해엔 교내 독후 글짓기·그리기 대회에서 해리포터 4권의 표지를 그려 상도 받았다. 해리포터 내용을 만화로 요약한 적도 있다. 얼굴과 팔다리만 그린 ‘초간단’ 캐릭터지만 내용을 대충 훑어보기엔 ‘딱’이라고. “제 경우 한 가지에 몰두하다 보니 싫어하는 그림도 좋아지고 상까지 받게 되더라고요. 여러분도 뭐든지 좀 더 ‘깊게’ 즐겨보세요.”
14년의 기록
지난 1997년 책으로 첫선을 보인 해리포터 시리즈는 서점가에서도, 영화관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14년간 해리포터가 남긴 엄청난 기록들을 정리했다.
○…국내서도 1500만 부 팔려나가
해리포터가 유명해진 건 영국 작가 조앤 롤링(46세)의 원작 소설이 흥행에 성공하면서부터였다. 지난 1997년 발간된 원작 시리즈는 전 세계 67개 언어로 200여 개국에 소개되며 4억5000만부가 팔렸다. 국내에서도 해리포터 열풍이 이어졌다. 2011년 7월 현재까지 집계된 해리포터 시리즈 7편 23권의 판매 부수는 1500만부(문학수첩 집계). 한편 해리포터는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사랑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영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지난해 공개한 8개 대학(고려대·서강대·서울대·성균관대·숙명여대·연세대·이화여대·한양대) 도서관의 대출 실적(2008년 1월~2010년 7월) 1위는 단연 해리포터 시리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