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8 16:26:51
◆‘물 반, 고기 반’ 섬진강서 낚시 즐기던 소년
내 고향은 섬진강 옆 진메마을(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이에요. 전형적 농촌이죠. 고교 시절까지 우리 동네 35가구가 모두 농사를 지었어요.
난 4남 1녀 중 장남이었어요. 농사짓는 부모님의 일손을 늘 거들어야 했죠. 동생들이 줄줄이 태어나면서 더 바빠졌어요. 어린 시절 항상 동생들을 업고 다녔어요. 한 손으론 동생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꼭 받치고 다른 손으론 쇠여물을 주곤 했습니다. 오후엔 밭에 나가 감자를 캤고요.
어렸을 적 취미는 낚시였어요. 하루종일 일하다가 잠깐 짬이 날 때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동생들에게 젖을 먹일 때였어요. 그 시간만 되면 빛의 속도로 섬진강까지 내달렸어요.
친구들과 함께 바늘을 휘게 만든 후 명주실에 매달아 낚시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곤 강물이 무릎 높이 정도 되는 곳까지 나가 자리를 잡고 바늘을 던졌죠.그땐 물이 깨끗해 담그기만 하면 물고기가 척척 낚였어요.
◆원래 꿈은 ‘농장 주인’… 한때 오리농장 운영
내가 다니던 덕치초등학교는 집에서 40분 정도 거리에 있었어요. 등굣길은 무척 변화무쌍했어요. 한쪽으론 섬진강이 흐르고, 앞엔 선운산 숲이 펼쳐지고, 숲 속에선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학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낚시를 하거나 물장구를 치다가 지각한 적도 많았어요. 여름엔 하도 물장난을 많이 해 옷이 마를 날이 없었답니다. 훗날 교사가 됐을 땐 그 길을 학생들과 나란히 걸었어요. 그 시절을 다 합하면 줄잡아 26년 정도 같은 길을 오간 모양이에요.
중·고교 시절엔 전북 순창에서 유학 생활을 했어요. 주중엔 학교에 다니고 주말엔 고향집으로 와서 집안일과 농사를 거들었죠. 공부를 썩 잘했던 건 아니었어요. 딱히 이렇다 할 장래 희망도 없었고요. 그저 막연하게 ‘나만의 농장’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3 때 그 꿈이 이뤄졌어요. 내가 다니던 고교(순창농림고)에서 농장 운영 자금을 굉장히 싼 이자로 빌려줬거든요. 경쟁률이 엄청났는데 운 좋게 선정됐어요. 청와대며 전북도청이며 전북도교육청 같은 곳에 편지를 썼거든요. 아마 그래서 뽑히지 않았나 싶어요. (웃음)
그 돈으로 고향집에서 10분 거리에 터를 내고 오리농장을 세웠어요. 100마리쯤 되는 오리를 사들였죠. 학교에서 배운 대로 키웠더니 정말 쑥쑥 자라더군요. 좀 된다 싶으니 욕심이 생겼어요. 산 너머 마을에서 오리 200마리를 판다는 소식을 듣곤 곧장 사들였죠. 하지만 엄청난 사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어요. 300마리나 되는 오리들을 일일이 단속하는 것도 쉽지 않았죠. 1년쯤 겨우 버티곤 결국 모든 걸 접었답니다.
◆평범한 교사를 시인으로 이끈 책 한 권의 ‘힘’
할 일이 없어지자 막막했어요. 이곳저곳 떠돌며 방황도 많이 했죠. 보다 못한 친구들이 제안하더군요. 선생님 한 번 해보자고요. 요즘만 해도 교사 되기가 무척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시골 학교들은 교사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었어요. 싫다는 절 친구들이 억지로 설득해 시험을 보게 했어요. 친하게 지냈던 사촌 동생은 시험장이 있는 광주까지 가는 차비까지 쥐여주며 응원하더군요. 솔직히 시험을 어떻게 봤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신기하죠. 친구들은 다 떨어지고 저만 붙었거든요.(웃음)
교사가 된 후 모교인 덕치초등학교로 부임했어요. 아무런 준비 없이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더군요. 그러던 중 우연히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읽게 됐어요. 정말 재밌더라고요.
김수영 시인의 시, 이어령 선생 전집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이들을 바라봤어요.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어요. 매일 무심히 지나치던 등굣길 풍경마저도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뭐든 글로 쓰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어요. 처음엔 그게 시인 줄도 몰랐죠.
글이 쌓이다 보니 세상에 내놓고 싶어졌어요. 1년간 쓴 섬진강 연작시 ‘섬진강 1’을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 보냈습니다. 이후 30년간 시는 제 생활이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