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14 16:30:51
◆화가 지망생, 자동차 정비공 되다
어린 시절, 서울 인왕산 근처에 살았어요. 6남매의 맏이였는데 그림에 소질이 있었죠. 초등 3학년 땐 조선일보 미술경시대회와 동아일보 미술대회에 나란히 참가해 각각 입선과 금상을 받았어요.그때부터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시간만 나면 인왕산성에 올라가 경복궁과 청와대, 북한산 등 눈에 보이는 주변 풍경을 화폭에 담았어요. 공부도 곧잘 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답니다.
중학생이던 1970년, 새마을운동이 일어났어요. 정부는 농촌을 현대화하겠다는 목표 아래 전통 기와집이나 초가지붕을 콘크리트나 슬레이트로 바꾸기 시작했어요. 전통 기와장이셨던 아버지의 일감은 눈에 띄게 줄었죠. 덩달아 가정 형편도 어려워졌어요.
어느 날, 우연히 잠결에 부모님의 한숨 섞인 얘길 들었어요. “병일이는 공부도 잘하고 장남이니 집을 팔아서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어?” 그때 결심했어요. 가족을 위해 학교를 그만둬야겠다고요. 그리고 이듬해인 1971년, 중학교를 그만두고 버스회사 정비공장 수습공으로 취직했답니다.
◆“한 손엔 책, 다른 한 손엔 공구를”
서울 시내를 누비는 버스가 수백 대에 불과하던 시절, 자동차 정비 일을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열심히 기술을 배워 돈을 많이 벌고 가족도 보살피자고 마음먹었죠.
하지만 제게 주어진 일은 고작 해야 자동차의 문제 유무를 점검하고 보고하는 것뿐이었어요. 밤낮없이 일했지만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답니다. 답답한 맘에 선배들을 졸랐어요. “전 언제쯤 기술을 배울 수 있나요?” 돌아오는 대답은 맥 빠지는 것들뿐이었습니다. “글쎄, 1년은 지나야지.” 실제로 당시 기술자 사이에선 ‘공구는 빌려줘도 기술은 빌려주지 마라’는 말이 돌았어요. 그만큼 기술 배우는 건 만만찮은 일이었죠.
답답한 맘에 친하게 지내던 대학생 형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어요. 그때 형이 말하더군요. “모든 건 책 속에 있다.” 실무를 익히기 전 이론부터 공부하고 나면 남보다 몇 배는 빨리 기술을 익힐 수 있다는 말이었죠. 이후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마다 ‘자동차대백과사전’을 구하려고 청계천 헌책방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마침내 넉 달 후,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책의 힘은 역시 대단하더군요. 그동안 궁금했던 내용이 전부 담겨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책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이론 공부와 실무 익히기를 병행한 지 꼬박 2년, 드디어 기회가 왔어요. 남들은 10년 꼬박 일해야 오를 수 있는 ‘반장’ 자리에 오르게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