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12 16:23:12
고려 발전의 최대 원동력은 ‘활발한 교역’
어쨌든 그동안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던 우리 민족은 ‘고려’란 커다란 호수에 하나로 모이며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단다. 왕건은 상업을 지원하고 외국과의 무역을 장려해 점차 나라의 틀을 잡아나갔어. 고려 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건 12세기였는데, 이 시기 고려는 주변 나라들과 활발한 무역 활동을 펼쳤어. 특히 황해로 흘러드는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는 당시 고려 최대의 국제 무역항이었지.
벽란도는 인근 수심이 깊어 큰 배도 쉽게 드나들었고 수도 개경과도 가까워 국제 항구로선 안성맞춤이었어. 벽란도엔 외국 상인이나 사신이 머무는 건물이 있는데 이를 ‘벽란정’이라고 해. 늘 수많은 외국인으로 붐볐던 벽란도는 고려에서 해외 문물을 가장 빨리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단다. 벽란도엔 쉴 새 없이 배가 드나들었고, 수도 개경은 바다 건너에서 들여온 물건들로 가득한 상점이 즐비했어.
13세기 초 개경 인구는 50만 명이나 됐다고 해. 이게 다 고려가 대외 무역을 권장하는 등 개방적 자세로 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덕분이었어. 고려의 무역 상대국은 주로 중국 송나라였지만 거란, 여진, 일본, 동남아시아 상인들과도 거래했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아라비아 상인들도 종종 고려를 오갔지. ‘코리아’는 당시 이들이 고려를 부르던 발음에서 유래했어. 그들에게 ‘고려(Koryo)’란 발음은 아무래도 어려웠던 모양이야. 혀를 굴려가며 ‘코~려’ ‘꼬~레’ 하다보니 발음이 ‘코리아’로 바뀐 거지.
‘코리아’ 전도사는 고려 온 서양 상인들
13세기 중반 프랑스인 G.뤼브뤼키는 몽골 제국을 방문한 후, ‘동방여행기’란 책을 펴냈어. 이 책엔 “중국 동쪽에 ‘카울레(Caule·고려의 중국음<가오리>를 옮겨 쓴 말)란 나라가 있다”는 표현이 나와. 이게 바로 서양인에 의해 기록된 최초의 우리나라 관련 표현이란다. 이 단어가 점차 조금씩 표현을 달리하며 ‘코레(Corée)’, ‘코레아(Corea)’, ‘코리아(Korea)’ 등으로 변해간 거겠지?
그런가 하면 1655년 이탈리아인 선교사 마르티니가 펴낸 책 ‘중국지도첩’ 속 한반도 지도엔 우리나라가 ‘Corea’로 표기돼 있어. 당시는 조선시대였는데도 말이야. 또한 17세기까지 이슬람과 유럽 지역의 옛 지도 속 우리나라 명칭도 ‘신라’에서 ‘코리’, ‘코레’ 등의 고려 관련 이름으로 바뀌어갔다는구나.
그러고 보면 오늘날 세계 각국이 우리나라를 일컫는 명칭, 이를테면 독일의 ‘코레아(Korea)’, 프랑스의 ‘코레(Corée)’, 스페인의 ‘코레아(Corea)’, 러시아의 ’까레야(kapeя)‘ 등이 모두 고려에서 나온 이름이야. 물론 한자 문화권에 있는 일본과 중국은 우리가 쓰는 표기 형태를 그대로 받아 남북한을 각각 ‘한국’과 ‘조선’으로 표기하고 있단다.
꼬마 역사학자들, 고려 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니? 아마 고려인삼과 고려청자(특히 상감청자)를 떠올리는 친구들이 많을 거야. 당시 고려는 주로 금·은, 인삼, 나전칠기, 먹 등을 내다팔았단다. 송나라에선 비단·차·약재·서적을, 아라비아에선 수은이나 향료를 각각 사들였지. 이 밖에도 고려는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문화유산을 많이 남겼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팔만대장경, 고려청자 등이 대표적이란다. 어때, ‘코리아의 나라’ 고려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지?
그럼, 여기서 오늘의 퀴즈. 고려를 서양에 ‘코리아’로 널리 소개한 아라비아를 당시 고려 사람들은 뭐라고 불렀을까? ①대식국 ②중식국 ③소식국 ④미식국 정답은 다음 호에 알려줄게.
※지난 호 퀴즈 정답: ③낙성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