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05 16:44:48
총칼 없이도 전쟁에서 승리한 서희
당시 중국 북쪽에 있던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키고 요나라를 세운 후 세 번씩이나 고려를 침입했단다. 1차 침입은 993년 거란 장수 소손녕이 고려의 북쪽 땅을 요구하며 시작됐어. 당시 고려의 신하들은 왕에게 청했다고 해. “거란의 요구대로 북쪽 땅을 떼어주고 화해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희 장군의 생각은 달랐어.
‘거란이 왜 우리나라에 쳐들어왔을까? 아, 우리가 거란보다 송나라와 가깝게 지내는 게 못마땅해서겠구나!’ 곰곰이 생각한 후 원인을 발견한 서희는 소손녕을 찾아가 담판을 벌였어. “고려의 북쪽 땅은 옛 고구려 영토인 동시에 발해 영토이기도 하므로 오히려 거란이 고려에게 땅을 돌려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이야. 그리곤 덧붙였지. “우리가 거란과 가까이 지내려고 해도 두 나라의 길목을 여진족이 막고 있으니 통 친해지기가 어렵습니다.”
서희 장군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소손녕은 그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어. 결국 그는 지금의 압록강 동쪽에 위치한 강동의 여섯 지역(강동6주)을 고려에 돌려줬지. 멀쩡한 우리 땅을 내어주고 억지 화해를 하거나, 혹은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큰 전쟁을 벌어야 했던 상황에서 외교 담판(談判·서로 맞선 관계에 있는 쌍방이 의논해 옳고 그름을 판단함)만으로 승리를 거둔 서희 장군의 전략, 대단하지 않니? 서희 장군의 이 같은 공로로 고려는 빼앗길 뻔한 북쪽 땅도 지키고, 거란에 속해 있던 강동6주를 되찾았단다. 뿐만 아니라 사사건건 고려를 괴롭히던 여진족까지 몰아냈어.
쇠가죽으로 10만 대군 물리친 강감찬
거란이 고려를 세 번째로 침입한 건 1018년이었어. 당시 거란군을 이끈 소배압 장군은 10만 명이나 되는 군대를 이끌고 고려에 쳐들어왔지. 하지만 고려엔 강감찬(948~1031년) 장군이 있었어. 강감찬 장군이 귀주 지역에서 소배압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전투가 그 유명한 귀주대첩(1019년)이야.
귀주대첩에 얽힌 얘기도 흥미롭단다. 전투 초반 두 나라의 군대는 팽팽하게 맞섰다고 해. 그때 강감찬은 꾀를 하나 냈지. 흐르는 물을 쇠가죽으로 막아뒀다가 거란군이 물을 건널 무렵, 일제히 가죽을 치워 물을 터뜨리는 방법으로 거란군을 공격하는 전략이었어. 강감찬의 지혜 덕분에 고려는 큰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단다.
서희 장군이나 강감찬 장군 얘길 들여다보면 꼭 힘이 세다고 해서 훌륭한 장군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 부하를 이끄는 통솔력과 리더십, 앞날을 예측할 줄 아는 눈,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게 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앞으로도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수많은 위인과 장군, 애국자들에 관한 얘길 많이 들려줄게. 기대해도 좋아.
그럼 여기서 오늘의 퀴즈. 귀주대첩으로 거란에 큰 치욕을 안겨주며 고려를 위기에서 구한 강감찬 장군은 어디서 태어났을까? 힌트, ‘별이 내려온 곳’이란 뜻으로 강감찬 장군의 태몽(胎夢·아이를 낳을 거란 메시지를 전해주는 꿈)에 등장하는 장소이기도 해. ‘①서울대 ②현충사 ③낙성대 ④낙화암’ 정답은 다음 호에 알려줄게.
지난호 퀴즈 정답: 직지심체요절(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