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28 03:06:17
한 선배 학생은 힘에 겨워 휘청거리는 후배에게 "너 술 먹었냐? XX, 똑바로 해"라며 욕을 했다. "죄송합니다"라는 후배들의 대답 소리가 체육관을 울렸다. 얼차려를 시키는 동안 선배 학생 2~3명은 체육관을 돌며 커튼을 들춰보는 등 외부인이 체육관에 들어와 있는지 확인했다.
50분쯤 지나 체육관 2층과 체조도구 창고에서 잠입 취재를 하고 있던 본지 기자들을 발견한 학생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사진 찍었어요?", "녹음 했어요?"라고 물으며 "가방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 학생은 "후배들이 축제 때 술을 마시고 선배들한테 실수하고, 선배가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아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모였다"며 "이건 우리 과(科)의 문화"라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이건 교육이다. 다른 대학 체육학과에서도 다 이렇게 하지 않냐"며 "나도 1학년 때는 억울하고 신고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때 선배들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체육학과 아니면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 이유가 있다"고 했다.
이날 취재 과정에서 구타 장면은 목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한 학기에 3~4번씩 이런 식으로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단체 얼차려를 받는다"며 "작년에는 몽둥이로 맞았는데 몽둥이 6~7개가 부러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바닥에 머리를 박는 얼차려를 받다가 목 디스크에 걸린 학생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체육학과 등의 경우 "군기(軍紀)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이 같은 기합이 특유의 문화로 미화되고 있어 구타나 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모 대학 경호학과 학생들이 각목으로 후배를 구타한 사실이 드러났고, 지난 21일에도 모 대학 태권도학과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을 야산에서 구타하는 일이 벌어졌다.
구타 등 가혹행위가 만성화되면서 피해자들도 선배들의 폭력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월 대학교 학생선수 559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복수응답)에서 응답자들은 폭력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391명(69.9%), '훈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221명(39.5%), '대응해 봐야 소용없어서' 204명(36.5%) 등의 태도를 보였다.
최장호 고려대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운동을 하는 학생들은 정신력이 해이해졌다며 극기력을 높인다는 명분을 내세워 선배들이 얼차려를 주는데, 오래된 관행이라 없애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