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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위인전] '사극의 거장' 이병훈 프로듀서

2011/05/24 17:03:51

그는 이렇게 말한 뒤 수줍게 웃었다. 얼굴에 팬 주름 사이로 세월의 깊이가 느껴졌다. 드라마의 거장(巨匠·어떤 분야에서 특히 뛰어난 사람) 이병훈 프로듀서(PD·64세). ‘허준’(1999~2000년), ‘대장금’(2003~2004년) 등 숱한 명품 사극(史劇·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이나 드라마)이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그의 눈은 드라마에 대한 열정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책과 영화를 사랑했던 ‘충청도 소년’
내 고향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이에요. 2남 2녀 중 큰아들이었죠. 위로 누나가 한 분 있고 아래론 남동생과 여동생이 각각 하나씩 있어요.
일곱 살 되던 해에 6·25 전쟁이 터졌어요. 당시 우리 가족은 서울에 살고 있었죠. 아버지는 전쟁이 나자 밖을 둘러보겠다며 나가신 후 소식이 끊겼어요. 행방불명이 되신 거죠. 우리 가족은 커다란 슬픔을 안고 피란길에 올랐어요. 고향 전의면과 충남 서산 일대를 떠돌다가 초등 3학년 때 외가가 있는 인천으로 이사를 갔죠.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습니다.

어렸을 땐 동네 친구들과 주로 전쟁놀이를 하며 놀았어요. 전쟁 중이라 별다른 장난감도 없었죠. 요즘 어린이들처럼 축구 등 공놀이를 하는 건 꿈도 못 꿨어요. 공부는 곧잘 하는 편이었어요. 반에서 1등은 아니어도 2~3등은 했죠. 중·고교 6년 내내 장학금을 받고 다녔어요. 나보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나 동급생들 공부를 가르쳐주며 틈틈이 용돈도 벌었죠.

중·고교 시절엔 책과 영화에 흠뻑 빠졌어요. 인천 자유공원 근처의 한 초등학교 담벼락에 있던 ‘간이 책 대여점’에서 매일 책을 빌려보곤 했죠. 누나와 함께 밤새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어요. 할머니가 “기름 닳으니 얼른 자라”고 혼내셔서 창문 밖으로 불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이불로 막아놓고 책을 읽기도 했답니다. 없는 돈을 모아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을 찾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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