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6 16:38:45
이날 준서와 광일 씨는 4개월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얘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조경애 서울 중현초등 선생님(교육복지 업무 담당)은 “동행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후 준서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지난 1년간 이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1 멘토 박광일 씨의 이야기
오늘은 보고 싶었던 준서를 만난 날. 베트남으로 봉사 활동을 가느라 몇 개월간 보지 못했지만, 교실 문을 열고 “쌤~!”하며 달려오는 준서를 보니 마치 어제 만났던 사이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안 본 사이에 준서는 한 뼘 더 자란 것 같았다.
동행 프로젝트를 알게 된 건 지난 2009년 3월, 학교로 향하는 지하철 안이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할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무릎을 탁쳤다. “바로 이거야!”그리고 1년 후인 지난해 3월 준서를 만났다.
준서는 무척 밝고 착한 아이였다. 다만 욱하는 성격이 있어 친구들과 자주 부딪히곤 했다. 준서를 만나면서 결심했다. ‘공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준서가 긍정적 생각과 꿈을 갖도록 도와주자!’
준서의 꿈은 동물 조련사다. 동물 이야기를 할 때 준서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거린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동물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준서를 볼 때면 ‘이 아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끝까지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준서는 운동도 좋아한다. 특히 배드민턴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준서에게 필요한 건 ‘적절한 동기 부여’였다. “좋은 동물조련사가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식으로 준서를 설득했다. 막연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 지 알게 된 준서는 부쩍 공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요즘 준서는 받아쓰기 시험을 보면 90점을 거뜬히 넘긴다. 일단 공부를 시작하면 1시간이 넘도록 집중력을 발휘한다.
준서를 만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준서에게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선생님, 매일 가르쳐 주샤서 감사합니더.” 고사리 같은 손으로 꾹꾹 눌러 보낸, 군데 군데 맞춤법이 틀린 메시지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후로 준서는 내게 마음을 열었다.
준서를 만나며 나 또한 많은 걸 배웠다. 무미건조(無味乾燥·재미나 멋이 없이 메마름)한 대학생활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부족하지만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무척 감동적이었다. 시야도 넓어졌다. ‘이 넓은 세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게 뭐든 도전하고 싶다’는 의지도 생겼다.
그리고 얼마 전, 외국 교환학생 선발에 응시해 합격 통보를 받았다. 3개월 후면 준수와 잠시 이별하게 된다. 남은 시간 동안 준수와 많은 시간을 함께할 생각이다. 우선 준수가 동물을 실컷 구경할 수 있도록 함께 동물원을 찾기로 했다.
10년, 20년 후에도 ‘준서의 멘토’로 남고 싶다. 평생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 힘들 때면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친형처럼 준서가 꿈을 이룰 때까지 곁에서 도와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