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윤샘이 들려주는 한국사이야기] 용기와 우정··· '화랑 정신'은 신라의 힘이었지

2011/04/24 17:05:12

“싸움터에선 죽어도 물러서지 않는다”

너희 혹시 ‘화랑도’라고 들어봤니? 신라시대 때 15~18세 청소년을 모아 만든 단체 이름이야. 제24대 진흥왕(534~576년) 때 생겼지. 화랑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약속도 있었는데 이를 세속오계(世俗五戒)라고 해.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믿음으로 친구를 사귀고 △전쟁에 나가선 물러서지 않으며 △생명을 함부로 해치치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화랑도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단다. 확실하진 않지만 임신서기석에 글을 새긴 주인공들도 화랑도 소속 아니었을까?

세속오계가 언제 처음 생겨난 말인지 궁금할 거야. 신라 제26대 왕인 진평왕(?~632년) 때 당시 신라의 수도 경주에 ‘귀산’과 ‘추항’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어. 어려서부터 친했던 이들은 현명한 스승을 찾아 평생 마음을 바르게 할 가르침을 얻고자 했지. 때마침 둘은 당시 중국 수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가실사’란 절에 머무르던 원광법사를 만나게 됐어. 그때 원광법사가 두 사람에게 알려준 계율이 바로 세속오계란다.

귀산과 추항은 원광법사에게서 세속오계를 배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제의 침략을 받게 됐어. 둘은 세속오계 중 ‘싸움터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는 임전무퇴(臨戰無退)를 몸소 실천한 후 죽음을 맞았어. 이후 신라 사회에서 임전무퇴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됐단다. 그래서일까? 고려 시대 학자 김부식(1075~1151년)이 쓴 역사책 ‘삼국사기’엔 임전무퇴를 실천하고 전사한 신라인 얘기가 여럿 등장한단다.

“친구를 사귈 땐 믿음을 잃지 않는다”

불과 열다섯 나이로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군과 맞선 관창(645~660년) 역시 신라의 화랑이었어. 당초 계백 장군은 어린 관창의 용기를 가상히 여겨 그를 돌려보내려고 했어. 하지만 관창은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똘똘 뭉쳐 다시 백제군에게 달려 들었지. 계백은 결국 관창을 죽일 수밖에 없었단다. 너희들 중 몇몇은 결국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관창의 아버지가 너무 비정하게 느껴질 거야. 하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그런 일은 어쩌면 당연했단다.

삼국 통일의 주역이자 역시 신라 화랑 출신인 김유신(595~673년) 장군 역시 아들 ‘원술’이 당나라와의 싸움에서 지고 돌아왔을 때, 왕에게 아들을 죽여 달라고 건의하며 끝까지 용서하지 않았다고 해. 너희 같았다면 열몇 살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 나가 목숨 바쳐 싸울 수 있었을까? 이처럼 신라 화랑들은 신라인을 하나로 묶어 전쟁의 위협에서 나라를 구하는 버팀목 역할을 했단다.

세속오계 중 ‘믿음으로 친구를 사귄다’는 의미의 붕우유신(朋友有信)이란 말이 있어. 여기에도 애틋한 얘기들이 숨어 있단다. ‘죽지(랑)’에게서 받은 도움을 잊지 못해 ‘모죽지랑가’란 노래를 지은 ‘득오’, 평생 우정을 약속한 벗 ‘무관랑’의 병사(病死·병으로 죽음) 이후 슬픔을 견디다 못해 따라 죽은 ‘사다함’, 눈 먼 어머니를 모시고 힘들게 살다가 남의 집 몸종이 된 효녀 ‘지은’을 도운 ‘효종랑’.

2011년을 살고 있는 꼬마 역사학자들에게 필요한 정신은 뭘까? 임신서기석에 새겨진 맹세처럼, 원광법사가 얘기한 세속오계처럼 너희도 가장 친한 친구와 머릴 맞대고 ‘서로 지켜야 할 약속’을 한 번 정해보길 바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