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살아있는 위인전]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

2011/03/15 16:23:25

◆소년, 시(詩)와 자연에 빠지다

어릴 땐 밖에만 나가면 뭐든 재밌었어요. 돌멩이, 가재, 쥐 등 온갖 것들이 장난감을 대신했죠. 초가집 처마 밑에 있는 새끼 쥐를 꺼내 보면 불독을 닮았어요. 어찌나 귀여운지 애완동물 대하듯 쓰다듬고 뽀뽀도 했죠. 방학이면 곧장 강릉으로 내려가 개학하기 하루 전날에야 서울로 올라왔어요. 학교는 서울에서 다녔지만 시골과 자연에 파묻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원래 꿈은 시인이었어요. 지금은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감수성이 풍부하고 글쓰기를 즐겨 초등 3학년 때부터 훌륭한 시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종이를 공책처럼 엮어 갖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동시를 썼어요. 친구와 개천에서 가재를 잡고 놀다가도 글감이 떠오르면 만사 제쳐놓고 공책을 펴들었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문예반 친구들을 따라 우연히 백일장에 참가했어요. 얼떨결에 나간 그 대회에서 실력이 쟁쟁한 문예반 친구들을 제치고 덜컥 장원을 차지했죠. 당시 심사위원이셨던 시인 장만영 선생님께 “중학생 수준을 뛰어넘는 작품”이란 칭찬도 받았답니다. 그날 이후 시인이 되겠다는 꿈은 더욱 확고해졌죠.

고등학교 때 ‘사건’이 터졌어요. 옛날 고등학교에도 지금처럼 문과와 이과가 있었거든요. 시인이 꿈이었으니 내 선택은 당연히 문과여야 했어요. 하지만 친한 친구들이 모두 이과를 지망하는 바람에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맘으로 덜컥 이과에 지원해버렸습니다. 누가 봐도 문과 체질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내심 나중에라도 문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 번 결정된 선택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했어요.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항의도 해봤지만 소용 없었죠. 교장 선생님은 그러시더군요. “성적이 잘 나오면 한 번 생각해보마.” 하는 수 없이 이과반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도 공부엔 별 흥미를 못 느꼈어요. 답답한 실험실 안에서 연구하고 보고서 쓰는 일이 따분하게만 느껴졌거든요.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