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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의 대학생들] [上] 등록 포기 학생 44% "등록금 마련 못해서…"

2011/02/28 03:04:24

작년 1년간 구씨는 공부한 기억보다 아르바이트한 기억이 더 많다. 학기 중 평일엔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2시간 동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강남역 패스트푸드 업체에서 햄버거를 만들었다.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는 바(bar)에서 술잔을 닦고 취객들 말 상대를 했다. 방학인 지금도 이번 학기 등록금을 위해 과외 2개와 바텐더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흔히 말하는 '빈민층'이 아니다.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에 다니던 아버지가 실직해 집안 사정이 좀 어려워지긴 했지만, 가족들은 고향 울산에 번듯한 집도 갖고 있다. 그러나 한 학기 등록금 400만원과 한 달 100만원(월세 45만원 포함)이 드는 생활비까지 부모가 도와줄 능력은 없다. 최근엔 어머니 관절염이 악화해 치료비 부담도 만만찮다. 구씨는 "너무 피곤하다 보니 수업 시간엔 졸기 일쑤"라고 했다.

대학생들은 입학도 하기 전에 생활비 마련에 쫓기는 일도 흔하다. 충북대 1학년이 되는 조모(19)군은 입학을 앞두고 집 근처 삼겹살집에서 시급 6000원에 하루 6시간씩 일하고 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스스로 새 학기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조군은 "국립대학이라 등록금이 250만원으로 그나마 부담이 적지만, 하루 3만6000원씩 벌어 어떻게 학비 대고 생활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급한 마음에 시중 은행보다 이자율이 높은 저축은행 등에서 생활비를 빌렸다 갚지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대학생들도 드물지 않다.

부산에서 대학을 나온 권모(28)씨는 대학 4학년이던 2008년 9월 생활비로 쓰기 위해 한 저축은행에서 500만원을 빌린 뒤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권씨는 "졸업해 직장을 잡으면 갚으려 했는데 지방대 출신이 취직하기가 쉽지 않더라"며 "대출 이자에 쫓기며 살고 있다"고 했다.

전북 전주의 한 대학을 다니는 양모(24)씨는 작년 6월 가족들과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몇 달 뒤 어머니 박모(44)씨에게 저축은행 3곳으로부터 '양씨가 1300만원을 빌렸다'는 서류가 날아들었다. 박씨는 "아들이 혼자 끙끙 앓다가 잠적한 것 같다"며 "어떻게 대학생에게 1000만원이 넘는 고액을 빌려줄 수 있느냐"고 말했다.

저축은행 등은 정부에서 보증하는 학자금 대출이나 시중은행 대출과 달리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 대학생들이 몰린다. 대출 과정에서 재학·군필 여부와 나이, 학년, 대출 연체 여부 등을 묻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일부 저축은행들은 광고하는 이자(8~37%)보다 높은 평균 24~28%의 높은 이자를 매겨 학생들 부담을 키우고 있다. 인터넷 직업포털 잡코리아가 작년 대학 졸업예정자 11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7명 이상이 빚을 안고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집의 대학생들은 휴학이 '선택' 아닌 '필수'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사이트 '알바몬'이 지난 1월 대학생 6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학생 4명 중 1명이 "이번 1학기에 등록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답했고, 등록 포기 이유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서'가 44.7%로 가장 많았다.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 지표에 따르면 국내 대학 등록금은 OECD 국가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한 유흥업소 운영자는 "몇 년 전부터 방학 때 인터넷에 구인광고를 띄우면 여대생들이 몰리고 있다"며 "등록금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데, 이렇게까지 해서 대학을 졸업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고 말했다.

대학생 등록금 문제를 다루는 민간단체인 전국등록금대책네트워크와 참여연대 등은 "작년 말 대학생 16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응답자의 88.6%가 등록금 마련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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