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8 01:19:55
◆손기정 다큐 보며 태극마크 꿈꾸던 내성적 소년
어릴 땐 달리기에 소질이 있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운동회에 나가 상 받아본 기억도 전혀 없죠. 하지만 시골(충남 천안)에서 나고 자랐으니 달리는 건 생활이었어요. 집에서 초등학교까지가 3㎞ 정도 떨어져 있었거든요. 초등생에겐 결코 만만찮은 거리였죠. 걸어서 30~40분은 가야 하는 그 길을 6년 내내 뛰어다녔어요. 돌이켜보면 그런 경험이 마라톤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기초가 닦였다고나 할까요?
어릴 때부터 운동선수가 되고 싶긴 했어요. TV에서 손기정 선생님(1932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의 일생을 그린 프로그램을 봤는데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거든요. ‘나도 저분처럼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라를 대표해 뭔가 할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어요. 꼭 마라톤일 필욘 없었죠. 워낙 스포츠를 좋아해 어떤 종목이라도 상관없었어요.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에요. 예전부터 그랬죠.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있는 걸 좋아했어요. 특히 부끄럼이 심해 여자애들하곤 전혀 말을 못했어요. 포크댄스 시간이면 쑥스러워 손에 나뭇가지 같은 걸 쥐곤 그걸 잡으라고 했죠(웃음). 오죽하면 고교생 때 별명이 ‘색시’였어요.
하지만 무슨 일이든 맡으면 쉼없이 노력해 결국 해냈어요. 부모님이 농사일을 시켜도 꾀 부리거나 핑계 대는 법이 없었죠. 공부요? 그건 좀…(웃음).
◆어머니·가족·국민 생각하며 20년간 41회 완주
마라토너의 길이 열린 건 고등학교 다닐 때예요. 1학년 때 처음 만난 친구가 ‘상근이 아빠’로 잘 알려진 이웅종 이삭애견훈련소장이었거든요. 그 친구가 육상부 가입을 권유했어요. 워낙 뛰는 걸 좋아해 별 고민 없이 그러자고 했죠.
육상부에서 받은 첫 번째 훈련은 험한 산길을 넘어 독립기념관까지 가는 거였어요. 10㎞가량 되는 직선 코스였죠. 다른 부원들은 대부분 중학교 때부터 운동을 시작한 아이들이었어요. 하지만 그들에게 뒤지지 않고 무사히 훈련을 마쳤죠. 그때 ‘아, 나도 가능성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운동을 하겠다고 하자 부모님이 크게 반대하셨어요.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뒷바라지해줄 여유가 없다는 게 이유였죠. 축구나 야구가 아닌 육상 선수가 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육상은 다른 종목에 비해 비용이 덜 드니까 그나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대회에 출전해 상장을 하나 둘 보여드리자 부모님도 조금씩 마음을 여셨어요. 실력으로 부모님을 설득한 셈이죠.
고교 졸업 후 실업팀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했어요. 20년간 풀코스(42.195㎞)를 41회나 완주할 수 있었던 건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에요. 첫 번째 목표는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었어요.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거든요. 성적이 좋으면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요. 결혼 후엔 아내와 아이들의 행복이 목표가 됐어요. 마라톤 역사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아쉽게 은메달에 그친 후 욕심이 더욱 커졌어요.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주는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꼭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