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학부모 외면
이달 초 마감한 서울을 비롯한 전국 51개 자율고 1차 지원에서 학생을 채우지 못한 학교는 15개교였다. 자율고 전체 경쟁률은 1.5대1로 지난해(2.5대1)보다 크게 떨어졌다.
자율고는 '자율과 경쟁'으로 요약되는 MB 교육의 상징적인 모델이다.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부여받았다는 의미인 자율고가 학생 외면을 받은 것은 말만 자율이지, "학생선발에서 자율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부는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자율고는 중학교 내신 상위 50% 학생들을 지원대상으로 정하고, 당락 여부를 추첨으로 정하도록 규제했다.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학교에 자율권을 주면 사교육비가 늘어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 중3 학부모는 "자율고 등록금이 일반고의 3배인데, 기존 일반계고와 똑같은 방식으로 학생을 뽑아 가르친다면 왜 자율고에 가겠냐"고 말했다.
기존의 수월성 교육기관이던 외국어고 입학 경쟁률도 크게 떨어졌다. 정부가 영어내신 위주로 외고 입학생을 선발하도록 규제하자 올해 전국 33개 외고 평균 경쟁률은 1.7대1로, 지난해(3대1)나 재작년(5.8대1)에 비해 계속 줄고 있다.
현 정부는 과거 정부의 '평등주의 교육'을 비판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엘리트 교육을 끌어내리는 정책을 잇달아 추진하는 모순을 보이는 것이다.
◆"사교육 잡기 나서면서 엘리트 교육 포기"정부는 이런 추세가 도리어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반응이다. 교과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쟁률이 3대1 이상되면 그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사교육이 성행하게 된다"며 "다양한 학교 선택을 할 수 있고 학교별 경쟁률이 2대1를 넘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경고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서울 A대학 교수는 "지난해 정부 일각에서 제기된 '외고폐지론' '사교육과의 전쟁' 등의 영향으로 특목고와 자율고 입시가 '내신'과 '추첨'으로 바뀌었다"며 "공부를 열심히 하기 보다 운(運)에 당락을 맡기는 상황이 된 것은 우려할 만 하다"고 말했다.
이공계 영재를 키우는 과학고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낫다. 올해 과학고 경쟁률은 3.6대1로 지난해(3.9대1)보다 소폭 주는 데 그쳤다. 하지만 "학생들이 과거보다 과학고에 입학하기 위해 심화학습을 하지 않는다"고 교육계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과학·수학올림피아드 성적을 반영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이 어려운 공부를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서울 B대학 교수는 "과학고 입학생이 전국적으로 1500명밖에 안 되며 이들을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인재로 키워야 하는데, 사교육 방지를 이유로 선발방식을 바꿔 학생들 실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자율형 사립고
교육과정과 학생운영 등에서 자율성이 부여된 학교. 자율고가 되려면 재단이 일정액 이상을 전입금으로 학교에 납부해야 하며, 수업료는 일반고의 세 배까지 받을 수 있다. 원래 학교에 학생 선발권을 부여할 계획이었으나, ‘사교육 유발’ 등의 지적이 일자 대도시 지역은 추첨으로 입학생을 뽑는 것으로 바뀌었다.